고구려 유민들은 멸망 후 신라를 적대시했으나 당나라가 한반도 영토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자 신라와 손잡고 당나라에 맞서 싸웠다.
과거 고구려에 예속되었던 말갈·거란의 일부 세력들이 당나라에 붙어 신라를 공격하자 고구려 유민들은 나려연합군을 조직해 말갈군을 격파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나라를 세우기도 했다.
고구려의 대형(大兄) 관직에 있던 검모잠(劍牟岑)은 670년 6월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해 패강(浿江)에서 당의 관리와 승려 법안(法安) 등을 죽이고 서해(西海) 사야도(史冶島)로 남하했다.
검모잠은 보장왕의 서자 안승(安勝)을 한성(漢城:황해도 재령 부근)으로 모셔 임금으로 추대하고 문무왕에게 소형(小兄) 다식(多式)을 사신으로 보내 제후국이 되기를 자처했다.
문무왕은 그를 고구려 국왕에 임명하고 금마저(金馬渚: 익산)에 머물게 했다.
이때 당나라 고간(高侃)이 침입하자 고구려 부흥군에 내분이 발생했다.
안승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망명하자 문무왕은 재위 14년(674) 그를 보덕왕(報德王)에 봉하고 재위 20년(680)에는 자신의 누이를 왕비로 주었다.
문무왕이 안승을 고구려 국왕, 보덕왕으로 책봉한 것은 고구려를 제후국으로 삼은 것으로서 당나라의 천하관을 부인하고 신라가 당과 대등한 제국(帝國)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후 신문왕 3년(683) 안승은 신라의 소판(蘇判) 벼슬과 김(金)씨 성(姓), 집, 토지를 하사받고 신라의 귀족이 됨으로써 신라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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