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진 대구 '3.8 만세운동' 대구 최초 3.1 행사 영남권 불씨 지퍼

입력 2004-03-01 11:25:02

대구의 만세 운동은 3월 8일.

1919년 대구지역 항일 운동의 또다른 시초가 됐던 만세 운동이 3월8일 서문시장(대구 중구 대신동)에서 일어났으나 기념행사는 물론 역사적 평가마저 가려있다.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일주일 뒤인 3월8일 서문시장에서 계성학교, 대구고보, 신명여고 등의 학생 600여명과 시민.시장상인 등 1천여명이 넘는 군중들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였던 것.

남성정교회(현 제일교회)의 이만집 목사와 남산교회 김태련 장로 등이 주도한 이날 만세 운동은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 대형 태극기 40여매를 앞세워 일본경찰?저지선을 뚫고 서성로와 경북도청(현재 경상감영공원)을 거쳐 달성군청(현재 대구백화점 주변)까지 시가행진이 이어졌다.

이날의 만세 운동은 경북지역은 물론 영남권 만세운동의 불씨가 돼 곳곳으로 퍼져나갔으며, 총책임자인 이만집 목사를 비롯한 157명이 구속돼 대구형무소 등지에서 옥고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대구 만세 운동은 정확한 사료 수집이 안돼 지역에서조차 잊혀지고 있는 실정이다.

3.8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이 목사(46년 사망)가 항일독립운동의 공훈을 지난 99년 뒤늦게 인정받아 독립 유공자로 추서돼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것을 빼고는 기념행사나 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의 표지석 등 아무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영남대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김일수 연구교수는 "대구 만세운동 이후 10일에 남문 밖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나는 등 지역 항일 운동의 불씨가 됐다"며 "그러나 학계에서조차 3.8 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김 연구교수는 또 "지역 역사의 진실 규명에 대한 노력과 함께 후세들에게 역사적 교훈을 심어줄 수 있도록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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