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

입력 2004-02-27 09:22:08

옛날 옛적 어느 곳에 어떤 가난한 집이 있었는데, 이 집에는 효성스런 며느리가 남편과 함께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 그런데 시어머니가 앞을 못 보는 장님이야.

살림이 하도 가난해서 세 식구 끼니 잇기도 힘드니까, 한번은 남편이 먼 데로 돈 벌러 가버렸어. 그래서 며느리 혼자서 눈먼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됐지. 남의 집 품팔이를 해 가며 어렵게 어렵게 사는데,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돈 벌러 간 남편은 돌아올 줄 모르네. 일 년이 다 가도록 감감 무소식이야. 그러니까 살림은 점점 쪼들리고 살기는 점점 어려워지지. 아침을 끓여먹고 나면 저녁거리가 없고, 저녁을 끓여먹고 나면 아침거리가 없고, 이런 형편이야. 그래도 며느리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모시려고, 저는 못 먹어도 시어머니 밥은 거르지 않고 잘 챙겨 줬어.<

그런데 시어머니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날마다 밥투정, 반찬 투정을 해.

"얘, 요즘엔 어찌 입맛이 없구나. 만날 맛없는 나물국만 먹어서 그런 모양이니, 이제부터는 기름진 고깃국 좀 끓여 다오".

"예, 어머님. 다음번엔 꼭 고깃국 끓여 드릴게요".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참 막막하거든. 당장 먹을 양식도 있느니 없느니 하는 형편인데 무슨 수로 고기를 구해? 며느리는 생각 끝에 혹시 물고기라도 잡아 볼까 하고 개천에 나가 봤어. 그런데 물고기 잡기는 어디 쉽나? 이리 저리 다니다 보니, 마침 개천가에 지렁이가 굼지럭굼지럭 기어다니더래.

'어머님이 고깃국을 드시고 싶어하시니, 저거라도 잡아다 국을 끓여 드리는 수밖에 없다'.

며느리는 지렁이를 많이 잡아다가 씻고 또 씻어서 국을 끓였어. 그걸 푹 고아서 국을 끓여 가지고 시어머니께 드렸지. 시어머니는 앞이 안 보이니까 그게 지렁인지 뭔지 알 리가 있나? 그냥 한 숟갈 떠먹어 보니 아주 맛이 좋거든.

"얘, 이건 무슨 고깃국이 이렇게 구수하냐? 이제부턴 날마다 이런 국을 끓여 다오".

"예, 어머님. 그렇게 할게요".

그 다음부터는 날마다 지렁이를 잡아 가지고 국을 끓여 드렸어. 시어머니는 맛있다면서 아주 잘 먹지.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까 시어머니가 아주 살이 포동포동 올랐어. 지렁이국이 맛있으니까 밥을 잘 먹고, 밥을 잘 먹으니까 살이 오르는 거야.

그러다가 드디어 아들이 돌아왔어. 아들이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전보다 훨씬 몸이 좋아졌거든.

"아니, 어머니. 뭘 드시고 이렇게 좋아지셨어요?"

어머니가 아들 오면 보여 주려고 국에 든 고기를 건져다가 말려서 삿자리 밑에 넣어 논 게 있었어. 그걸 보여 줬지.

"우리 며느리가 날마다 이 고기로 국을 끓여 줘서 잘 먹었다".

"아니, 어머니. 그건 지렁이잖아요?"

"뭐야? 지렁이야?"

깜짝 놀라서 소리쳤더니 그만 눈이 번쩍 떠졌대.

지렁이국 덕분에 몸도 좋아지고 눈도 뜨게 된 거지. 그래서 그 뒤로도 세 식구가 오래오래 잘 살았대. 그저께까지 살았대.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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