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군대에 간 아들

입력 2004-02-27 09:22:22

아들을 처음으로 군대에 보내는 날은 빗방울조차 서럽게 가슴을 흔들며 눈앞을 뿌옇게 가렸었다.

훈련장에 아들을 내려놓고 빗속을 헤치고 오면서 세상이 다 흔들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빗물 속에 눈물을 떨구며 애꿎은 소나기만 탓했었지

일주일이 흘러 아들 소지품과 편지가 도착했을 때는 옷에 배 있는 땀 냄새 속에서 아들의 냄새를 맡으며 꺼이꺼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며 저린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얼마나 애썼는가.

그러고도 며칠이 지났을까 처음으로 도착한 군복을 입은 아들 사진을 받아 보고는 반가움보다는 수척한 모습에 또 마음이 얼마나 갈라졌었는지 모른다.

허리가 한줌이라니…. 몇 날 몇 일을 두고 아들 사진을 꺼내 보면서 또 얼마나 가슴이 아렸었는지….

"힘든 경험은 인생에 있어서 좋은 약이 된단다.

네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하도록 해라. 네 나이에 할 수 있는 좋은 경험들이니 고통까지 즐겨라".

시린 가슴을 억누르고 아들에게 편지를 썼었다.

행여나 경험하지 못한 생소한 고통이 너무 무거워 주저앉을 까봐 용기를 주는 편지를 써야만 했다.

고통까지 사랑하도록….

지난 일요일은 오랜만에 그 아들 면회를 다녀왔다.

이제 군대에 간지 6개월이 지난 아들, 이병에서 일병으로 제법 군복이 몸에 맞게 자리를 잡아가고, 군대 살이 붙는다더니 얼굴과 허리엔 살이 붙어서 군인의 절도가 몸에 밴 대견한 아들로 변해 있다.

면회래야 의자에 마주 앉아 먹고 얘기하는 것 뿐 아들을 잠시나마 쉬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못내 아쉬웠다.

면회가 끝날 시간 아들과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또 등을 돌려야 했다.

명령 속으로 멀어지는 아들과 헤어져 나오는데 문 뒤에서 아들이 부르는 것 같이 뒷머리가 시려서 자꾸만 돌아보지만 아들은 없다.

이 나라의 어버이들이 다 그랬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빈 가슴을 쓸어내리며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그 아들들이 당당하게 의무를 마치고 오는 날 힘든 경험들이 삶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에, 어려움과 고통을 딛고 정신적으로 또 한 단계 성장할 아들들이기에 마음을 추스르며 군복무 중인 이 나라의 모든 아들들에게 힘을 실어 보낸다.

구연옥 시인.덕촌보건진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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