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소금 어물지고 내성장에 언제가노/가노가노 언제가노 열두고개 언제가노/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고개를 언제가노/대마담배 곡물지고 흥부장에 언제가노/가노가노 언제가노 열두고개 언제가노/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고개를 언제가노'.
해방 직후까지만 해도 울진과 봉화는 등짐 보부상들이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동해안과 경북 북부 내륙지방간 상거래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 노래는 소금 등 무거운 등짐을 지고 태백준령 130리 열두고갯길인 봉화와 울진을 오가던 옛 등짐꾼 보부상들의 애환서린 가사다.
봉화읍내 나이많은 상인들은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워 시름을 달랠 적이면 요즘도 흥얼거리기 일쑤다.
이처럼 울진과 봉화사이 태백 준령을 넘나들던 등짐꾼들의 행렬이 몇해 전 안동-영덕간 안동간고등어 운송풍속을 재현하듯 봉화읍내 상인들이 중심이 돼 옛 그대로 재현된다.
봉화내성상인회(회장 강유섭)와 봉화군청도 당시 내성장의 위용과 개성상인에 버금가는 선대 내성상인들의 상도덕과 업적을 기린 울진의 '내성행상 불망비(乃性行商 不忘碑.경북도 문화재자료 310호)'를 그대로 복제해 봉화읍내에 건립한다.
울진상인들이 봉화상인들의 후덕함과 의로움을 기리며 조선후기인 1890년경 봉화와의 경계인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다 세워 둔 이 비는 울진의 등짐꾼들이 봉화 장꾼들의 두령격으로 접장(接長)인 봉화 내성사람 정한조와 봉화쪽 등짐장수의 우두머리로 반수(班首)인 권재만 행상을 기리는 불망비다.
당시 울진과 봉화를 오가는 선질꾼(등짐꾼)들은 울진장(2일, 7일)과 부구장(3일, 8일)에서 해산물과 소금, 염장어물, 미역 등을 구해 쪽지게에 지고 험준한 태백준령 열두고개를 넘어 봉화 지역의 5일장을 찾아 다녔다.
봉화 내성장(2일, 7일)과 춘양장(4일, 9일), 재산장(5일, 10일)에서 잡화와 약재, 양곡, 포목 등을 물물교환 형식으로 구해 울진으로 돌아갔다.
소금 등 무거운 등짐을 지고 내성리와 울진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잡아 열흘정도나 걸렸다고 한다.
봉화군 문화경제과 직원 이문학씨는 "울진과 봉화는 은어축제와 송이축제 등 내륙.해안의 이질성보다 동질성이 강하다"라며 "봉화-울진간 선질꾼 행렬 재현 등 전통문화 교류를 통해 해안-내륙을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과 관광.문화사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봉화.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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