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不良 '뒷 파도'가 더 무섭다니

입력 2004-02-26 11:29:31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거대한 신용불량'이 이헌재 경제팀의 첫 발목을 잡고있다.

새 경제팀이 넘어야 할 산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지만 신용불량에 대한 해결책 없이는 우리 경제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위기 인식은 일단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앞만 보고 달리던 산업화 시대에도 신용은 잃지 않았는데 21세기 '신용화 시대'에 우리 경제가 어쩌다 하루아침에 이런 불량 덩어리를 안게 됐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이런 점에서 한 신용카드 전문컨설팅업체가 국내 신용카드업체들의 자체 기준에 따라 잠재신용불량자를 집계한 결과 400만명 정도로 추산됐다는 발표는 충격을 더해 준다.

신용불량자는 지난해 말 372만명인데 여기에다 잠재신용불량자 400만을 합치면 770여만명이 신용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다.

한마디로 이런 불량 상태로 경제가 굴러가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런 일이다.

이헌재 부총리가 최근 금융기관에 "신용불량자 양산을 막기 위해 은행장들이 한계 채무자의 신용회복에 직접 힘써 달라"며 주택담보대출 만기 연장 협조를 요청한 것은 신용불량 대책 마련이 그만큼 화급함을 말해준다.

특히 은행이 거래 중소기업과 연계해 청년취업을 알선하면 신용불량자를 줄일 수 있고 자산건전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요구는 금융기관에 마치 정부 정책의 일부를 위임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신용불량은 해결돼야 한다.

그러나 관치(官治)나 위압에 의한 문제 해결은 임시방편이 될 뿐이다.

대출을 연장해주고 불량자 기준을 완화한다고 해서 불량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잠재불량자를 양산시킬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지 않는가.

불량 사회의 근본 원인은 외환위기 극복책으로 국민에게 분에 넘친 소비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비가 더 이상 한국 경제의 기적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깨닫고, 만에 하나 연체자들이 자신의 부채가 탕감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정책은 아예 생각도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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