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와 태극기 사이...-외화 "날 좀 보소"

입력 2004-02-26 09:13:34

요즘 영화계 풍경은 입이 귀에 걸린 한국영화들과 눈꼬리가 귀에 닿은 외화들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태풍 '실미도'를 피해 2월이면 극장에 나서볼까 꿈꿨던 외화들은 '태극기…'라는 또 하나의 허리케인을 만나 한없이 표류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그동안 인고(忍苦)의 세월을 견뎠던 외화들이 드디어 총공세의 칼을 뽑았다.

다양한 장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지역 영화팬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외화들. 유난히도 짧은 대구의 봄향기를 맡을 수 있을까.

◇더 이상 못 기다려!

2월 27일은 근 두달여 동안 한국영화에 점령당했던 지역 영화계 고지를 탈환하려는 외화들의 제로 아워. 코미디물인 '스쿨 오브 록'과 '붙어야 산다'를 시작으로 '신 설국', '타임라인', '실종', '실비아' 등 무려 6편의 외화들이 지역 극장가에 걸린다.

'스쿨 오브 록'은 록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동반하지 않고도 배우들의 코믹한 연기와 극장에서 크게 듣는 록의 명곡들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다.

인물들 간의 갈등보다는 록 밴드의 성장과 속성에 대한 코믹한 묘사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잭 블랙의 원맨쇼를 방불케 하는 코미디물. 또 다른 코미디 영화 '붙어야 산다'는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를 연출한 패럴리 형제의 '웃기면 웃고 싫으면 말고'식의 패럴리 유머 연장선이다.

또 한때 '유민 포르노'로 잘못 오인돼 유명세를 탔던 '신 설국'은 일본 대중문화 전면개방의 첫 수혜작으로 스크린 나들이를 한다.

여기에다 '리쎌웨폰' 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도너의 SF 판타지 어드벤처물인 '타임러너'와 토미 리 존스 주연의 스릴러물 '실종'도 이번 총공세의 후방지원을 맡는다.

◇화제의 영화 맞대결

내달 초에는 '혹성탈출' 이후 절치부심했던 팀 버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트릭스'에 등장했던 총알이 공중에 떠 있는 장면을 팝콘으로 바꾸는 등 팀 버튼만의 현란하고 엉뚱한 시각효과를 동화 같은 판타지로 재창조해 내며 기괴하지만 훈훈한 인간 드라마 한편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것은 안소니 홉킨스, 니콜 키드먼이라는 대어를 낚은 '휴먼 스테인'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배경으로 한 '휴먼스테인'도 주연 남.여배우 명성만으로도 눈길을 끌만한 영화다.

◇아쉬운 퇴장

프랑수와 오종에게는 올해 한국이(특히 대구) 지옥으로 비쳐질 것 같다.

베를린영화제 단체연기상을 수상한 '8인의 여인들'이 한국영화들에 밀려 당초보다 2주일이나 개봉을 연기하는 수모를 겪게 되더니, 대구에서는 아예 비디오가게 신세로 전락한 것. 또 인종 갈등을 코미디로 적절히 치환, 찬사를 받았던 '브링 다운 더 하우스'도 대구 극장가에는 초대를 받지 못했다.

결국 이제나저제나 개봉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지역팬들에게는 아쉽기만 한 소식이다.

'요즘 멀티플렉스는 싱글플렉스다'라는 어느 영화인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건 왜일까.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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