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골프콩트-골프과부에서 얄미운 여자로

입력 2004-02-19 09:04:55

십수 년 전 남편은 나를 '골프과부'로 만들었다.

주말이면 해 뜨기 전에 나갔다가 해 진 뒤에 귀가하기 일쑤였다.

참다 못한 내가 남편에게 따졌다.

남편은 나에게 골프를 같이 하든지 싫으면 자기만이라도 풀밭에 방목시켜 달라고 했다.

나는 내 서방 남의 서방 할 것 없이 모두 빼앗아가는 골프를 상대로 내 서방만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도전장을 냈다.

그러나 골프는 녹록하지 않았다.

초보시절 라운딩 동반자들에게 욕만 실컷 먹었다.

옷이라도 한 벌 사 입고 골프장에 나가면 "패션 쇼하냐, 공은 더럽게 못 치면서…"라고 했다.

뒷땅을 치거나 빗맞혀서 골프공이 메추라기처럼 통통 튀어 가면 "발로 차도 그보다는 더 가겠다"느니, 공을 풀숲으로 박아 넣으면 "음침한 성격답게 너른 풀밭 놓아두고 으슥한 곳만 찾아다닌다"거나, "워터해저드에 수장시키면 가정주부가 계란 한 줄 값인 공을 물 속에 집어넣고도 아까운 줄도 모른다"거나, 그린 앞의 벙커와 뒤의 벙커를 교대로 들락거리면 "연습 안하고 잘하려는 도둑 심보는 버려라"고 나무라며 나를 천덕꾸러기 취급했다.

이후 실력을 쌓기 위해 골프장을 싸돌아 다녔다.

추운 겨울 동도 안 튼 새벽에 보따리를 싸서 달려 나가면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노벨상을 받았겠다"고 놀림받았고, 골프대회에 나가 부상으로 쌀 한 포대라도 받아오면 "그린피가 쌀 한가마니 값인데 여태껏 태산만큼 쏟아 붓고 수입은 겨우 한 봉지냐", 비 오는 날 라운드를 하면 "감기 걸려 고생 좀 하든지 아예 벼락 맞아 뒈져라"는 악담들이 쏟아졌다.

페어웨이에서는 공이 제법 날고, 그린에서는 공이 제법 구멍으로 굴러 떨어진다 싶을 때도 욕먹기는 마찬가지였다.

초보들 돈 따먹는 사악한 선배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아 얼굴에 곰보자국도 생겼다.

내가 2m도 넘는 퍼트를 성공시키면 옛날에는 퍼트가 짧으면 공무원처럼 소신없다고, 길면 산삼먹고 힘났느냐고 염장을 지르던 친구들도 "쟤, 구멍에 넣는 솜씨 좀 봐라. 밤낮으로 얼마나 저 짓만 했으면 저 경지에 달하겠니?" 라고 입을 삐죽거리면서 무지무지하게 아까운 얼굴로 세종대왕이 그려진 지폐를 건넸다.

살림은 팽개치고 골프장에서 살았는데 아들은 일류대학에 들어갔다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그 여자에게 욕을 할 것이다.

"얄미운 년"이라고. 얄미운 년, 내가 골프를 하면서 들은 욕 중에서 제일 기분 좋게 들었던 욕이었다.

소설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