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 비준을 통과한 이후 농촌 들녘은 한숨과 수심이 가득하다.
경산의 포도.복숭아 재배 농업인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면서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
그러나 그냥 주저앉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농업인들과 경산시와 농협 등은 대처방안을 찾고 있다.
◇포도.복숭아 재배 현황
"마침내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가뜩이나 기름값과 영농자재값이 올라 수지타산 맞추기가 어려운데 칠레산 과일들이 대량으로 들어오면 과수 농가 대부분은 버티기 힘들 것입니다".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다음날 경산 남산에서 시설포도 2천600평, 노지 포도 1천700평 등 모두 4천300여평의 포도농사를 짓는 백병욱(46)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7, 8년전 저유가 시대에는 시설포도가 다른 작목에 비해 수지가 맞았다고 했다.
600평당 연간 100만~200만원 어치 기름값으로 출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가가 많이 오른 요즘 기름값만 연간 700만~800만원, 많게는 1천만원이나 들지만 포도값은 오히려 떨어졌다고 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시설포도 재배농민들은 평균 7천만~8천여만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경산의 포도 재배면적은 1천197ha(2천800여농가), 복숭아는 1천543ha(3천200여농가). 두 작목의 경북도내 점유율은 각각 14%와 21%로 도내에서 3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FTA가 공식 발효되고 세계적인 과실류 수출국인 칠레산 과일이 들어오면 경산지역 과일 재배농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포도의 경우 비수기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46%인 현행 관세를 10년간 매년 10%씩 낮추는 계절관세를 적용한다.
하지만 국내 시설포도 출하시기가 4~6월이어서 3~6월에 수입 유통될 칠레산 포도와 겹친다.
이 때문에 경산의 160여 시설포도 재배농가(재배면적 59ha)들이 긴장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시설포도의 경우 600평을 기준으로 시설비 4천여만원, 온풍기 값 1천500만원, 연간 기름값 1천여만원, 매년 갈아야하는 비닐비용 150여만원 등이 든다.
인건비를 제외하더라도 시설포도는 kg당 6천원 정도의 생산비가 투입된다.
칠레산 포도가 kg당 3천원선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가격경쟁력은 아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포도 1천500평과 복숭아 3천평의 농사를 짓는 박한수(55.자인면 남촌리)씨는 "4, 5월쯤 FTA가 공식발효되면 당장 값싸고 당도가 높은 칠레산 포도가 밀려올 텐데 앞으로 먹고 살 일을 캄캄하다"고 했다.
10년내 관세가 철폐되는 복숭아는 식물검역에 따라 앞으로 5, 6년간은 수입이 어려울 전망이다.
칠레산 유통기간이 국내산과 경합되지 않아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복숭아 재배농민들도 시름에 차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3천평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채종래(56.와촌면 소월리)씨는 "칠레산 복숭아의 과육이 딱딱해 저장성이 우수하고 가격 또한 저렴해 국내산 복숭아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타개책은 없나
현실로 다가온 FTA에 대해 우리 농업인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이다.
경산시농업기술센터 홍은근(56)소장은 "친환경 고품질 과일 생산만이 살길"이라고 강조했다.
또 "토양시비와 지력증진, 재배기술 및 관리요령을 지키고 완숙후 수확하여 선별 포장을 통해 고품질의 과일을 생산할 때 수입산과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991년 하우스포도 시설재배를 시작, 1.6ha의 시설포도를 포함해 모두 2.1ha에서 2억원의 조수입을 올리고 있는 김진수(55.남산면 전지리)씨의 각오는 남다르다.
2003년도 경북도 농업명장으로 선정된 그도 "칠레산 포도와 첫 경합하는 올해가 분수령"이라며 "생산비 절감을 하면서 고품질 포도를 생산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면세유 계속 유지와 파이프, 비닐, 퇴비 등을 싸게 공급하지 않으면 포도농민들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남산에서 시설포도를 재배하는 백재철(48)씨도 "칠레산 포도와 가격경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다만 국내산이라는 안전성과 품질우위로 맞설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산시 농업기술센터 이재헌(48)원예특작담당은 칠레산과 경합이 되지않도록 출하 시기를 늦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담당은 "시설포도 생산 농가의 출하 성수기가 5월말부터 6월 초순이어서 칠레산과는 1개월 정도 경합을 한다"면서 "기름값이 비싸 2월 초순 보름정도만 가온을 하고 그 이후 무가온으로 재배해 7월 중, 하순에 수확을 하면 국내 노지재배와도 경쟁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와촌면 시천리 김영하(52)씨 등 9농가는 개량(하우스형)비가림 시설에 2월 중순 피복해 7월말부터 8월초순까지 수확한다.
5kg상자당 평균 2만3천~2만5천원을 받아 비닐.농약대 등을 제하고도 600평당 2천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비가림시설의 확대도 필요하다.
경산시농업기술센터 박인수 농촌지도과장은 "잦은 비 등 기상 이변이 속출하는 요즘에는 비가림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포도 비가림시설은 600평당 500만원정도로 추가 비용이 들어 영세농들이 선뜻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산의 포도재배면적 1천197ha중 비가림시설을 한 곳은 29%인 250ha에 불과하다.
지자체와 농협 등의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12년째 복숭아 1만여평을 재배를 하고 있는 이윤도(45.남산면 갈지리)씨도 "소규모 농업체제로는 경쟁력이 없기 때문에 농장도 규모화해야 한다"며 "맛있고 얼굴있는 복숭아만 생산한다면 얼마든지 외국산 농산물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신맛의 천도 복숭아보다 단맛 복숭아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복숭아 생산이 필요하다"고 했다.
포도재배농 장주홍(56.자인면 계남리)씨는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피해를 보는 과수농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과 소득안정을 위해서는 과수소득직불제 도입이 가장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채종래씨는 "정부차원에서 토양개량제, 유기질 퇴비 등을 지원하여 유기농법을 활용한 우수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제값에 판매할 수 있도록 유통구조 개선 등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협중앙회 경산시지부와 경산지역 회원농협도 자체 비가림시설이나 포장재 사업 등의 지도.지원사업과 유통구조 개선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경산시지부 전임수 차장은 "농민들은 질 좋은 포도.복숭아를 생산하고 회원농협은 물량공급을, 시지부는 판로개척을 담당하는 등 연합판매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촌 들녘에서 만난 많은 농업인들은 "국회 비준처리 과정에서 깨진 농업계와 비농업계와의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며 "정부가 FTA 중장기 대책 등 종합적인 농업 회생대책을 마련해 차질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산.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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