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떼려다 혹붙인 청문회

입력 2004-02-13 11:52:35

말주변도 없는 것이, 준비자료도 불성실하게 TV토론에 나와 우세하는 '패널'들을 많이 보았다.

민주당 김경재 의원은 동원산업의 노 후보측 50억 제공설을 고성으로 추궁하다 그 회사 회장으로부터 "청문회는 들을 청(聽), 물을 문(問)인데 왜 피의자 심문하듯 하느냐"고 면박을 당했고, 허위자료로 망신당했던 한나라 홍준표 의원은 문제의 CD(양도성예금증서)와 관련, 특정기업 자금에 대한 국세청의 확인책임을 떼쓰다시피하다 국세청장으로부터 거절당하는 창피를 무릅써야 했다.

이 한심한 청문회는 예고된 결과였다.

지지율에서 밀린 민주당, 차떼기 자금의 수렁에서 몇달째 허덕이고 있는 한나라당이 '위기 탈출'의 전기(轉機)로 삼자고 한 발상부터 문제였다.

수사중인 사안을 물고 늘어질 때는 뭔가 결정적 증거물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야당의 '패널'들은 실탄 없는 '빈 총'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청문회 실패는 여야 3당과 증인 4자(者)의 공동의 책임이다.

무엇보다 청문회를 제안한 민주당과, 거름지고 장에 따라간 한나라당의 책임이 1순위다.

민주당은 동원의 50억 제공설과 민경찬 펀드의 차관급 개입설의 추궁에 완전실패했다.

한나라 또한 '500억 대 0'의 추궁에 헛발질만 거듭했을 뿐더러 오히려 삼성의 220억 추가제공 건(件)이 튀어나와 혹떼려다 혹붙인 꼴이 됐다.

열린우리당 또한 집권당으로서의 각인에 여전히 실패했고, 청문회를 몸으로 저지하거나 사실상 보이콧하는 구태정치를 답습했다.

국회의결에 의한 청문회를 깡그리 무시함으로써 국회 권능을 스스로 깎아내린 셈이다.

이러고서도 모두들 "나를 다시 한번 국회로 보내달라"고 외칠텐가.

급기야는 증인들마저 무더기로 불출석했고, 비아냥 답변으로 국회를 우습게 만들었다.

이기명.안희정.이호철씨 등 청와대 측근들까지 청문회를 무시했고, 심지어 옥중의 권노갑씨는 "내가 입열면 정동영은 죽는다"고 이죽대기까지 했다.

'굿머니 수십억 제공' 이것 하나 건지자고 청문회로 그 난리를 쳤으니 결국 '패자(敗者) 뿐인 청문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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