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골 테마공원

입력 2004-02-12 16:28:23

무진장 눈이 내렸다. 새벽부터 내린 눈으로 평상시보다 두 배나 더 걸려 담양에 도착했다.

88고속도로에서 바라보는 눈덮인 자연의 풍광도 기가 막히지만 담양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에 메타쉐쿼이어가 무수한 홍갈색 가지위에 방금내린 신설을 덮어쓰고 끝없이 도열하고 있는 길은 이국의 정취 그대로다. 눈이 내리면 어떤 곳이든 아름답지 않을까마는 죽림에 내린 눈은 환상이다. 댓잎은 그렇다 치고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외줄기 대나무 한쪽으로 붙어있는 눈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눈 내린 겨울 대숲은 순백의 눈과 대나무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의 선경이 된다.

'겨울 대숲으로 오라/ 시퍼런 댓잎 사이로 불어오는 / 짱짱한 칼바람이 / 공공하게 언 몸뚱이를 후려치거든 /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라. 정지원의 '대숲에 서면'이란 시가 딱 어울리는 장면을 대나무골 테마공원(www.bamboopark.co.kr)에서 만날 수 있다.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3만여평의 고지산자락을 따라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 선 가운데 대숲이 1만여평에 걸쳐 하늘을 가리고 빽빽하게 군락을 형성하고 있고 대밭 밑동에는 대나무이슬을 먹고 자란 야생 차밭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다.

언론인 출신의 사진작가 신복진씨가 30년전부터 조성한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울창한 대나무숲길 사이로 조성된 죽림욕 산책로. 맹종죽과 왕죽, 분죽, 조릿대(산죽)가 빽빽한 사이로 청량한 대숲 바람을 맞으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산책로에 들어서면 옅은 밤꽃냄새같은 댓잎향이 코끝을 간진다.

입구부터 대숲은 들어서는 사람을 별천지로 안내한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 이런 대숲길이 있을까? 거기에다 온 허공을 가득채우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의 향연과 함께라면 그저 행복할 뿐이다. 대숲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하늘을 가린 대숲, 속이 빈 대나무는 인간사가 부질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대숲의 한 중간에 서 있으면 수행자가 된다. 대잎의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어느 한순간 안고 있던 눈들을 뿌리며 참선중 졸던 수행승을 사정없이 죽비로 따닥 따닥 내리치듯, 줄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에 화들짝 몸이 깨어난다.

600m에 달하는 세갈래 대나무숲길은 적당한 높낮이로 연결되고 중간 중간에 쉼터와 주인이 직접 찍은 대나무와 담양의 사계를 담은 '대나무 갤러리'가 나타나고 TV 드라마를 촬영했던 오두막이 나타난다. 여러 CF와 '흑수선', '청풍명월' 등의 영화도 이곳에서 일부 촬영했다.

어린 대나무가 밀집해 있는 오두막 오른쪽으로 난 산책길에 들어서서 밖을 보면 울창한 숲으로 컴컴한 내부와 대비되는 바깥풍경이 그저 그만이다. 테마공원앞 동네 기와지붕에 가득쌓인 흰눈을 배경으로 검은 나무들이 가지마다 눈을 이고 있고, 하늘이 뚫린 듯 하염없이 내리는 눈발의 풍광에 숨이 막힌다.

얽힘 없는 수직으로 평생을 서서 빈 세상을 지향하는 대숲을 한바퀴 돌고나면 다시 입구다. 대나무로 수로를 만든 샘터옆에 정감어린 장독대가 있다. 처음 들어섰을 때 대숲에 시선을 다 뺏겨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뚜껑과 항아리 절반까지 덮힌 눈이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 취재수첩

◇가는 길 : 88고속도로→담양 톨게이트→순창방향 24번 국도→석현교지나 우회전◇먹을거리와 사우나 : 담양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떡갈비가 유명하지만 대통 안에 잡곡쌀을 넣어 밥을 지은 대통밥이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대나무를 그대로 그릇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대나무 특유의 향이 배어나온다. 송죽정이 유명하다.(061-383-4921, 1인분 9000원)

송죽정 건너편에 대나무 건강랜드(061-383-0001, 입장료 3000원)는 대나무잎 온천탕과 대나무 산소방 등이 마련돼 있어 대나무와 함께 여독을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인근 관광지 : 대나무골 테마공원 주위에는 소쇄원, 죽물박물관, 장성 백양사, 담양호, 금성산성 등 둘러볼 곳이 많다. 일찍 나선다면 하루에도 여러곳을 둘러볼 수 있다.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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