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는 배가 난파된 뒤 섬에서 혼자 살았다.
하루는 땔감을 줍고 다음 날은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먹고 그 다음날은 고기를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프라이데이라는 흑인 청년이 나타나면서 로빈슨 크루소의 섬 생활은 획기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가장 큰 변화는 두 사람이 일을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기 잡는 일은 솜씨가 좋은 로빈슨 크루소가 하고 과일 따는 일은 나무를 잘 타는 프라이데이가 하기로 했다.
이렇게 일을 나누어 특화하면서 과일과 고기 수확량은 증가하게 되고 창고에 가득 쌓이게 되었다.
수확이 증가하면서 로빈슨 크루소는 집으로 돌아가는 꿈을 가지고 배를 만들기 시작한다.
로빈슨 크루소의 이러한 변화는 시장경제를 나타낸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취미도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에 특화한다면 혼자서 모든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더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사람사이에 거래를 국가간 거래로 확대한다면 자유무역이 된다.
모든 나라는 저마다 주어진 인적 물적 자원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
한 나라가 생산성과 기술이 뛰어나서 모든 상품을 만드는 것 보다 더 잘 만드는 것에 특화해서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한다면 더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교우위의 원리이며 자유무역의 이익이다.
필자는 재작년부터 팔공산 자락에 조그만 땅을 일구고 있다.
아침에 투명한 햇살과 시냇물을 건너서 흙을 만지면 거기에 부드러움과 경외가 묻어난다.
이것이 좋아서 주말마다 가서 배추와 상추와 고추를 갈았다.
어떤 때는 욕심이 앞서서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하다가 이삼일씩 앓아눕기도 한다.
그래도 농사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하루를 아주 잘 살았다는 만족을 느낀다.
이러한 만족감은 아마도 흙과 자연이 덤으로 주는 작은 선물이리라. 작년 나의 작은 고추농사는 아주 흉작이었다.
나는 그 원인을 태풍 매미 탓으로 돌리는 데 주위 사람들은 서투른 농사꾼이라는 핀잔을 준다.
태풍 매미에 쓰러진 고추를 다시 세우고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황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농사일이란 것이 원가계산이 안 되는 작업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고추모종과 농약, 비료와 노동시간을 다 합쳐서 들어간 비용이 시장에서 고추를 그냥 사먹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간 것이다.
비교우위의 원리를 따르면 나는 농사보다는 연구에 특화하고 고추를 시장에서 사먹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며 느꼈던 만족감에서 비용으로만 따질 수 없는 무형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올해는 또 무슨 농사를 지을까 고민을 해본다.
우리는 칠레와 자유무역지역(FTA)협상을 앞두고 국회 비준절차를 밟고 있다.
그 사이에 농민과 정부사이에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자유무역지역이 성립되면 농업에 비교우위가 있는 칠레는 농산물을 수출하고 우리는 공산품을 수출하게 될 것이다.
정부의 주장은 공산품 수출로부터 얻는 이익이 농산물 수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자유무역지역협정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반면, 농민의 주장은 농산물은 공산품과 단순하게 비교해서는 안 되는 다기능적이며 고유한 비교역적 기능(NTC)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농업 그 자체가 식량주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친환경적이다.
또한 농업은 사회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가져오는 공공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자유무역지역협정에서 논쟁의 핵심은 누가 맞고 틀리냐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만약에 자유무역지역협정을 포기하고 농업을 지속적으로 보호한다고 하자. 농업보조금도 늘리고 농민에게 소득보전정책을 실시한다고 하자.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농업지원을 위한 재정적인 것만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언제까지 농업을 보호해주어야 하느냐이다.
보호되어야 하는 산업은 보호를 통해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성장잠재력이 있으며 성장 후에는 보호기간 동안의 경제적 피해를 충분히 보상할 수 있는 산업을 말한다.
과연 우리나라 농업은 일정한 보호기간을 거쳐서 성장할 수 있으며 그때까지 경제적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주요 수출경쟁국들은 자유무역지역의 협정추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자간 협상인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일정이 진척을 보이지 않자 양자협상인 자유무역지역의 협정을 통해 수출시장의 확대를 노리기 때문이다.
대구 경북지역의 총 생산에서 농어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이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4%이다.
다시 말해 대구 경북지역에서 수출이 농업에 비해 5배 이상의 소득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자유무역지역협정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 메뉴의 하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가야하는 길이다.
김희호(경북대교수.경제통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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