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day-알뜰주부 이상희씨

입력 2004-02-10 15:10:19

경기는 어려운데 물가는 오르고…. 빠듯한 월급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주부들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올 때다.

난방비, 부식비, 아파트 관리비, 세금, 아이들 교육비…. 돈 들어갈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저금도 조금씩 해야 되는데….

1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요즘의 1만원은 예전의 1천원 정도의 가치밖에 안된다.

아이들 세뱃돈도 1만원짜리 지폐를 건네는 게 기본이 됐다.

그래서 1천원 지폐를 꺼내기가 멋쩍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적잖다.

하지만 알뜰 주부에게 1만원은 큰 돈이다.

1만원이 몇 번 모이면 아이들 학원비가 나온다.

알뜰 주부 이상희(35.대구 수성구 만촌동)씨. 장을 보러 갈 때면 달랑 1만원 지폐 한 장만 들고 나간다.

그녀는 철저한 동네 시장 애호파. 젊은 주부치고 대형 할인점을 선호하지 않는 이가 없다지만 그녀는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서 시장으로 간다.

지난 6일 오후 동구시장(대구 동구 효목동). 세령(9·만촌초교 2년), 성훈(7) 남매를 데리고 시장에 간 그녀를 따라가 보았다.

과연 1만원으로 얼마나 장을 볼 수 있을까.

"발(50㏄ 오토바이)이 있다가 없으니 불편하네요".

그녀의 일성은 오토바이로 시작했다.

아줌마답지(?) 않게 그녀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시동생이 오토바이 회사에 다녀 중고 오토바이를 싸게 구입해 수리해서 6년 정도 탔다.

특히 시장에 갈 때면 오토바이가 아주 편했다.

하지만 지난 여름 아쉽게도 '오토바이 아줌마'란 별명을 떼게 됐다.

포항 시골에 계신 아버지가 장에 드나들기 불편해 하시는 것 같아 드렸다고 한다.

"우리 엄마 효녀죠".

아들 성훈이는 외할아버지께 오토바이를 선물한 엄마가 자랑스러운 모양이다.

"겨울이 되면 채소값은 평소보다 조금 더 오르는 게 보통이지만 물가가 많이 오른 것 같아요. 그래서 가격을 비교해 보며 물건을 사는 편이에요".

그녀는 먼저 동태를 샀다.

1마리에 4천원. 작은 것 1마리를 2천원에 사려고 했는데 작은 동태는 보이지 않았다.

4천원짜리는 4식구가 동태찌개를 2번은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컸다.

집에 가서 따로 손질하지 않아도 되게 물에 씻어 주는 생선가게 아저씨의 상냥함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갈치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저씨, 갈치는 얼마예요?"

1마리에 1만4천원. 역시 갈치는 비쌌다.

갈치를 좋아하지만 눈길을 돌릴 수밖에. 꽁치가 보였다.

3마리에 1천원. 물가가 올랐다지만 그래도 꽁치는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생선이다.

그녀는 흐뭇한 마음으로 꽁치를 샀다

시금치는 1단에 3천원이란다.

많이 비싸다.

추워서 방한모를 뒤집어쓴 할머니는 그대로 가져 가라고 하시지만 1천500원어치만 샀다.

콩나물 500원어치. 물가가 오르면 콩나물 양은 조금 줄어도 500원어치씩 살 수 있는 건 변함이 없다.

두부 반모 500원, 생김 1첩 600원, 호박 2개 1천500원. 성훈이가 감기에 걸려 차로 달여주려고 생강도 500원어치 샀다.

"식료품은 아무래도 시장이 싸요. 시장에선 조금씩 필요한 양만 살 수 있어서 좋잖아요". 만들어 놓고 오래 먹는 밑반찬을 만들지 않는 그녀는 바로바로 음식을 해먹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한꺼번에 많은 양을 사지 않는다.

생선 2마리에 1천원, 5마리에 2천원일 경우 5마리를 사는 게 싸게 치지만 그녀는 2마리만 산다.

냉동실에 얼려두어 봤자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대충 장보기를 끝내고 그녀가 들른 곳은 시장 거의 끝부분에 자리한 오뎅집.

"어서 오이소∼".

재바른 손놀림으로 호떡을 굽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따끈따끈한 어묵, 호떡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도 어묵, 호떡을 파는 집이 많지만 유독 이 집이 붐빈다.

알고 보니 인터넷 사이트에 맛집으로 소개될 만큼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란다

"단골 손님이 인터넷에 올린 모양이에요. 손님들이 많이 온다고 '동구시장 종착역'이라고 부르대요".

주인 아주머니 최명희(49)씨는 인심도 후하다.

어묵 4개 1천원, 호떡 1개 300원 가격이 정해져 있지만 용돈이 빠듯한 학생들이 오면 덤으로 1개씩 잘 집어준다.

이씨는 아이들과 오뎅 4개 1천원어치를 사먹었다.

뜨끈뜨끈한 오뎅 국물을 먹으며 계산을 해봤다.

"이것 저것 사고도 1만원을 다 못 썼네요".

동태를 한끼 분량 2천원으로 계산하니 1만원 중 900원이 남은 셈이다.

이날 장 본 걸 모아보니 양이 꽤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걸로 몇 끼를 해먹을 수 있을까. 동태찌개, 생김구이, 호박전, 참치동그랑땡, 호박전이 이날 저녁 메뉴다.

다음날 저녁은 콩나물국, 꽁치구이, 시금치나물무침, 계란찜. 참치통조림은 선물받은 걸로 쓰고 무, 달걀, 양파, 파, 당근은 집에 있는 걸로 쓴다는 계산이다.

반찬을 해먹고 남은 호박, 시금치, 두부 등은 놔두고 또 먹을 수 있으니 2끼 이상 해먹는 셈이다.

아침은 부모님께서 만들어 주신 누룽지로 숭늉을 해 먹으니 따로 반찬이 들게 없다.

"어떨 땐 한달 반찬값이 4만원 정도밖에 안 들 때도 있어요. 많이 들어야 10만원이죠".

이씨는 쌀, 김치, 된장, 고추장 등은 부모님께 얻어 먹는다고 했다.

부업을 하며 생활비를 아끼는 이씨는 "요즘은 주부들에게 1만원도 아쉬울 때"라며 "아이들 학원비라도 만들려면 주부들이 알뜰하게 절약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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