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쌀의 해. 하지만 연초부터 핫 이슈로 떠오른 쌀 재협상 문제는 농민들의 움츠러진 가슴을 더욱 옥죌 뿐이다.
정부가 지난달 20일 쌀 재협상을 관련국들에게 통고한 이상 관세화 유예 연장이냐, 아니면 관세화로 갈 것인가, 관세화로 갈 경우 개도국 지위가 가능할 것인가를 두고 농민들은 근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부의 농업대책에 전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미국 등 주요 쌀 수출국들은 한국시장 공략을 위한 장기전략을 수립하고 우리농촌을 압박하고 있다.
수입쌀에 대처할 방법은 없는지, 지난 1997년 전국 쌀 증산왕에 오른 의성 다인농협 정석조(鄭錫祚.44.사진) 조합장을 만나 쌀에 얽힌 애환들과 새해들어 전국민의 관심사로 부각된 쌀 문제 해법을 들어봤다.
다인농협 사무실에서 만난 정 조합장은 조그만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 전형적인 농사꾼 모습 그대로였다.
정 조합장은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20여년간 일관되게 쌀농사만 지어온 탓에 농사꾼들 사이에선 쌀 박사로 불린다.
그 만큼 쌀농사에 대한 지식이 박식하다는 뜻이다.
그는 "수십년 전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는 음독한 사람에게 쌀뜨물을 먹여 토하게 하고, 산모들이 젖이 잘나오지 않을 경우 생쌀을 꾹꾹 씹어 아기에게 먹이는 모습들도 적잖게 볼 수 있었다"며 쌀 예찬론을 폈다.
또 "쌀이 귀한 시절 산골처녀들이 시집가기 전까지 먹은 쌀이 채 한 말이 못된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소개했다.
그는 "60대와 70년대 초반만 해도 쌀농사는 거의 소와 인력에 의존했고 70년대 후반부터는 경운기가 보급되면서 기계화영농이 첫선을 보였다"며 "자신을 경운기세대"라고 강조했다.
이후 80년대와 90년대 초까지는 소형 트랙터가 간간이 모습을 보이다가 90년대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 곡물건조기 등이 본격 도입되면서 쌀농사도 대형화, 기업형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
당시 60.70.80년대만 해도 다수확을 첫번째로 꼽아 정부가 포상을 할 정도였으나 90년대에 들어서는 생산비 절감쪽으로, 2000년대는 친환경 기능성 쌀을 장려하는 등 시대에 따라 정부의 쌀농사정책도 변해갔다.
다수확을 장려하던 3공시절 경북도내 한 기초자치단체는 흉년으로 정부수매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상부기관의 문책을 두려워한 나머지 다인의 한 농가에서 생산한 쌀로 1개면의 수매물량을 모두 채웠다는 일화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공무원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농사꾼이 가장 살기좋은 시절은 3공시절이었다"는 그는 "쌀 문제에 관한한 현재로서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다만 "현재 1ha에 50만원이며, 4ha가 상한선인 논농업직불제를 최소한 ha당 100만원으로 인상하고 수혜 폭도 5ha 이상 10ha까지 확대해야 국내 쌀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농업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논농업직불제로 ha당 120만원 지원하고 있으며, 평균 경작면적도 95ha에 달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는 것.
그는"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쌀소비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몇년이 지난 묵은쌀을 사용하고 있는 학교급식용 쌀도 제때 생산된 쌀로 교체해야 쌀소비를 늘릴 수 있다"고 나름대로의 소비확대책을 제시했다.
그는 또 쌀 재협상과 관련, 최근 발표한 농촌경제연구원의 자료를 인용해 "올해 쌀 재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관세화 유예를 연장할 경우 이에 대한 대가로 매년 283만(41만t)∼387만섬(56만1천t) 정도의 외국쌀을 수입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반면 쌀의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지 않고 관세화로 전환할 경우 현재 진행중인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에서 우리나라가 개도국 지위를 잃고 쌀에 대한 관세상한이 150%로 정해질 경우 80kg 수입쌀 한가마니 가격은 7만5천원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추정치도 함께 내놨다.
때문에 정부는 대만처럼 쌀값 가이드라인을 설정해 그 이하로 떨어질 경우 정부가 보상하는 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가령 국내산 쌀값(80kg 기준)을 16만원으로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경우 16만원 이하로 떨어지는 폭 만큼 정부가 보상하는 정책이다.
이와 같은 정책들을 도입해야 민족농업인 쌀산업을 지키고, 벼랑 끝에 선 우리 농업을 살릴 수 있다는 게 농사꾼 정석조의 지론이다.
쌀농사 3만평(150마지기)을 경작하는 그는 "지난해 연간 매출은 1억원을 올렸으나 순소득은 4천만원에 그쳐 소득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며 "그러나 생명의 젖줄인 쌀농사는 계속 해야죠"하며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농업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농민들의 선택 또한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다"며 농민들이 신바람 영농을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정부정책을 기대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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