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의 골프꽁트-여성골퍼, 남성화장실을 점령하다

입력 2004-02-05 09:20:32

대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같은 동아리의 남학생들이 나이트클럽엘 가자고 했다.

나는 그때까지 나이트클럽엘 가본 적이 없어서 미적대고 망설였더니, 남학생 하나가 척 나서며 그저 자기네들을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무슨 커다란 나쁜 짓이라도 하러 가는 양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남학생의 구두 뒤축만 쫓아갔다.

그의 구두는 계단을 오르고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지나더니 대리석이 깔린 바닥에서 정지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나보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들었다.

끼약, 나는 비명을 지르고 오던 길로 냅다 뛰었다.

남성화장실이었던 것이다.

이런 민망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아마 여자가 남성 화장실에 들어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며칠 전에 남성화장실에 당당하게 들어갔고 볼일까지 보고나왔다.

친구를 따라 골프장엘 갔다.

프런트 데스크에서 옷장의 열쇠를 받은 친구를 따라 탈의실로 들어갔다.

앞장서서 걷던 친구가 멈춘 곳은 탈의실 입구에 위치한 화장실이었는데, 그곳에는 희한하게도 남성용 소변기가 도열해있었다

"얘, 요즘 여성골퍼는 이런데다 오줌 누니? 아니면 너 혹시 트랜스젠더?"

나는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떠는 대신 물끄러미 남성용 소변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은 여자들만 입장하는 '여성의 날(Lady's day)'이야. 아마도 여자들이 평소의 배는 몰려왔을 거야. 당연히 남성탈의실도 여자가 차지해야지".

친구가 웃음을 참으며 나의 촌스러움을 나무랐다

GOLF라는 단어의 발음은 사전에 나온 대로라면 걸프(Gulf) 또는 갈프(Galf)이다.

GOLF의 어원은 '여성불가'라는 뜻인 Girls off(걸스 오프)의 준말이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초창기의 골프장은 '이브가 없는 천국'이었음을 골퍼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1896년에 영국의 인기 여성작가 에드워드 캐너드가 골프광을 남편으로 둔 아내의 고독과 비애를 그린 '어느 골퍼 아내의 비애'라는 제목의 소설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골프과부라는 단어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만큼 골프라는 운동은 여성을 냉대해왔다.

아직도 골프코스뿐만 아니라 클럽하우스마저도 여성의 출입을 금지하는 골프장도 있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입회를 제한하는 골프장도 있다.

페어웨이도 그린도 클럽하우스뿐만 아니라 남성용 목욕탕까지 다 점령해버린 여성골퍼들을 보고 있노라니, 전 세계의 모든 골프장이 일년 중의 어느 하루를 여성만 입장하는 날로 정한다면, 그날은 남성들이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가사를 책임져야하는 '골프 홀아비의 날'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력

△이화여대 물리학과 졸업 △88년 월간문학(소설).9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동화)로 등단 △ '아담, 숲으로 가다' '불꽃놀이'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대머리 만만세' 등 작품집 발표 △계몽아동문학상, 인터넷문학상 수상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