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안은미(40.대구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시원스럽게 '빡빡 민머리'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듯 삭발한 머리는 파격과 도발, 반항과 자유 그 자체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예술가로서의 삶이 평탄치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결심했지요. 이왕 춤판에 뛰어들었으면 뭔가 경지에 이를 정도는 돼야 한다고. 무작정 머리를 밀었어요. 춤꾼 안은미를 위한 입문식의 한 과정이라고 할까".
안은미는 독특하다.
마흔의 나이에 삭발한 것은 그렇다 치고 열대어가 연상되는 화려한 색깔의 옷에다 눈부시게 번쩍이는 귀고리와 목걸이까지. 게다가 무대 위에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위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만큼 톡톡 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별의별 공연이 즐비한 뉴욕에서도 '크레이지 걸'로 불릴 정도니.
하지만 '별난 춤꾼' 안은미를 직접 만나보면 더욱 놀라게 된다.
아직 독신이어서 그런가. 그녀에게서 천진함과 순수한 소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듯한 그녀의 취미 생활도 영화 보기, 쇼핑, 독서, 술 마시며 떠들기다.
의외로 평범하다.
"무용계에서는 드물게 고정팬이 있는데 안은미 춤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안은미는 딱 잘라 말한다.
"아이디어나 기량 등 모든 면에서 저보다 나은 사람이 있나요". 너무 자신만만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기자에게 그녀는 "제 외모상의 호기심에다 작품의 독특함과 독자성을 관객들이 인정하는 것 같다"며 "작품이 실험적이면서도 현실에 근거를 둔 주제여서 무용 초보자나 전문가 모두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고 덧붙인다.
안은미의 춤은 일단 즐겁다.
물감을 듬뿍 찍어 얼굴이건 목이건 다 쳐 바르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때로는 가슴을 가린 웃통을 훌쩍 벗어버리는 등…. 또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으면 꼬리뼈에 성냥불을 댕긴 듯 에너지가 폭발한다"는 그녀의 말대로 열정도 넘친다.
게다가 그녀의 몸에서 신들린 무당 같은 '끼'가 펄펄 넘치는 것까지.
그녀는 이런 예술적인 감각을 '하늘이 내린 신의 부름'으로 정의한다.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안은미는 "소백산 정기를 한 몸에 받고 태어났습니다.
춤이 뭔지도 모를 어린 시절부터 몸 속에서 꿈틀거리려는 욕망을 느꼈지요. 초등학생 때도 매일 헤어스타일을 다르게 해서 다녔어요. 춤에 대한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해 결국 5학년 때 한국무용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안은미에게 1992년부터 시작한 유학생활은 그녀의 주체못할 끼를 확인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녀가 이화여대 무용학과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 것. "정말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춤도 재미있게 출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모든 열정을 춤에만 쏟아 부을 수 있어 더 좋았지요". 1997년 귀국한 안은미의 바람도 '재미' 무용가가 아닌 '재미있는' 무용가가 되는 것이었다.
에너지가 다하는 그 날까지 무대에 서고 싶다는 그녀는 "그래서 무용가와 안무가의 삶 모두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작품을 안무하고 제자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춤 추는 것을 포기하면 게을러질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결혼을 거부(?)하는 것도 출산, 육아, 주부로서의 삶에 빼앗기는 열정을 한 곳에만 집중하고 싶어서죠".
최근 춤꾼 안은미는 영화, 문학, 패션쇼 연출 등 다른 장르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헤어드레서, 미인, 인터뷰 등 몇 차례 영화작업에도 참여했어요. 패션과 무용을 접목시킨 패션쇼 연출도 했고. 예술은 모든 장르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습니다.
작품을 연출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요". 안은미 무용의 깊이를 한층 더하기 위함이다.
안은미야말로 21세기가 추구하는 '멀티형' 예술가가 아닐까.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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