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악보는/ 딱히 오선은 아니어서/ 더더구나 직선만은 아니어서/저 넌출넌출 산 능선과/ 그 사이로 굽이굽이 사라져/ 보이지도 않은 강줄기가 그것이리라/ 몇 가닥 전선줄도 악보 아니랴/무리져 날아오르는 새는 그의 음표일러니/ 또 새들만이랴/ 그 아래 식솔들 데리고 땅을 일구는 사람만큼/ 또 높은 음표 어디 있으랴"-복효근의 시 '음악' 일부.
지난 주 설이어서 모처럼 고향을 다녀왔다.
같은 명절 귀향길이라 해도 색채와 부피가 풍성한 추석보다는 철필로 그린 듯 간결한 겨울풍경이 있는 설 무렵의 고향길이 시 속의 풍경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누군들 고향에 '넌출넌출한 산등성'과 '굽이굽이 사라지는 강줄기'가 없을까마는 혹시 시인이 내 고향 사람이던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아 또래들의 무진장한 놀이동산이었던 뒷산과, 먼 여행에서라도 돌아올 때면 비로소 다 왔구나 하고 주섬주섬 버스 선반 위 짐을 내려 껴안고 있게 하는 그런 강이 마중 나오는 고향을 어떻게 내 고향만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빈 하늘에 '오선지처럼 걸려있는 전선줄'위에 '음표처럼' 앉아있는 새 떼들이 아이들의 돌팔매에 일제히 날아올라 겨울 들녘에 퍼지는 찬란한 음악이 되는 풍경도, 어떻게 나만의 고향풍경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토록 정답던 나만의 고향풍경도 어느새 이 도시의 모습과 닮아버렸고 이제 와서는 시인의 글을 빌어서야 잃어버린 모습을 겨우 기억하게 된다.
맞다.
'신의 악보'같던 고향의 풍경이 내 것만의 풍경이 아니었다면 다른 이들의 그 것도 다를 리 없겠으나 '식솔들 데리고 땅을 일구는 높은음자리표 같은' 이들이 아직 고향에 남아 있기에 우리는 명절이면 기어이 고향에 간다.
지난날 정든 풍경 속에 정들어 지냈던 사람들이 남아있기에 그 지독한 교통지옥을 뚫고 그렇게 가는 것이다.
서정호(베이프로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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