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모노세키 류오잔-용의 잔등 넘으니 그곳에 봄이 있네

입력 2004-01-29 09:06:48

올 겨울 한파는 매섭기만 하다.

14년만에 찾아왔다는 강추위, 모두 목을 잔뜩 움츠리고 종종 걸음을 치기에 바쁘다.

입춘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봄은 왜 이리 더디기만 한지.

아직 손에 잡히기엔 멀기 만한 봄을 찾아 시선을 조금 멀리 돌려보자. 목적지는 일본의 남서쪽 시모노세키(下關)시 류오잔(龍王山).

야마구치현에는 '류오잔'이라고 하는 산이 2개가 있다.

이번에 찾은 류오잔은 야마구치(山口)현 시모노세키시 요시미(吉見) 지구에 현해탄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산이다.

용의 등을 넘듯 차례로 높아지는 능선과 전방에 바다가 있는 빼어난 전망이 자랑. 가족단위의 등산 코스로 현지인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아직 관광객들의 발길은 뜸한 편이다.

사실 일본 각지에는 물의 신 '류오'(龍王)를 모신 '류오잔'이 여럿 있다.

용왕은 예로부터 일본에서 비를 기원하고 풍어와 바다에서의 안전을 관장하는 신으로 섬겨져 왔다.

이 곳 류오산은 높이는 614m에 지나지 않지만 바다와 인접해 있어 실제로는 훨씬 높게 느껴진다.

산행 코스는 요시미의 류오 신사(神社)에서 조구(上宮)을 경유해 미사카타메(深坂ため)못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반대쪽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오르막이 길고 가파른 계단으로 이뤄져 힘이 든다.

등산은 자그마한 간이역인 요시미 역에서 출발한다.

20여분 가량을 걸었을까. 류오 신사의 높다란 기둥 문이 등산객을 맞는다.

류오 신사의 역사는 자못 길다.

일본 사료에 따르면 기원전 180년 고우겐(孝元)천황 당시 지어진 우바야(乳母屋)신사와 기원후 91년 가게유키(景行)천황 시절 지어진 오와다츠미(大綿津見)신사를 다이쇼(大正) 6년(1917년)에 합사해 개칭한 것. 설날이면 신사를 찾아 참배하는 일본인들로 크게 붐빈다.

신사를 뒤로 한 채 5분 정도 걸어가면 본격적인 등산로 입구인 게구(下宮)가 모습을 드러낸다.

포장된 길을 따라 돌층계를 5분정도 올라가면 쥬구(中宮)를 만나는데 여기를 지나면서부터 거친 비탈의 산길이 지그재그로 펼쳐진다.

침목 원시림에 묻힌 숲은 쉽게 길목을 터주지 않는다.

앞서 간 사람들의 자취와 간간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테이프를 길잡이 삼아 흠뻑 땀을 흘린 후에야 겨우 속살을 드러낸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슴푸레한 등산길을 따라 곳곳에 멧돼지가 먹이를 파낸 흔적이 남아있다.

겨울의 독기도 이 곳을 훔치지는 못했는가 보다.

숲은 여전히 푸름을 간직하고 있고 이른 봄에나 필 동백꽃이 어렵잖게 눈에 띈다.

울창한 숲길을 1시간쯤 걸었을까? 뺨을 살짝 스치는 찬바람에 고개를 드니 산 속 용궁의 마지막 관문인 조구(上宮)가 우뚝 서 있다.

여기서부턴 꽤 경사가 여유로워지고 걷기도 편해진다.

다시 용기를 내 10분정도 걷자 이윽고 작은 평원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막혔던 시야가 터진다.

용왕산 정상에 오르자 북쪽과 서쪽에는 가모시마(加茂島)와 요시모(吉母) 해수욕장 너머로 현해탄이 넘실댄다.

동쪽으로는 아늑하게 내려앉은 미사카타메 저수지를 휘감은 능선이 해변을 따라 달려간다.

뜨거웠던 땀방울이 한기가 되어 파고들 즈음 하산을 준비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하산 길이 녹록치 않다.

하산 길은 용의 굽은 등을 타고 내리듯 500고지, 400고지, 300고지의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넘어야 한다.

각 고지의 정상마다 다르게 보이는 주변 경관은 다른 어떤 산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맛이 있다.

2시간 정도 걸어 후쿠에 역 근방에 다다라서야 산행은 대충 끝난다.

산행의 피로를 푸는 데는 온천이 적격. 택시(약 1천500엔)를 타고 근방에 있는 일본 전통 온천인 '요시미 온천'(성인 8천엔)에 들러보자. 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요시미 온천은 알칼리성 탄산천으로 류머티즘이나 신경통에 특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행경비는 2박3일에 29만9천원. 문의 051)253-5887.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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