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테디베어

입력 2004-01-27 15:02:41

목 따세요.

등도 따야 돼요.

눈알이 빠졌네.

웬 엽기적인 말들? 그러나 도살장 정도의 분위기로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이렇게 험악한(?) 말들을 주고 받는 이들의 손에 예쁜 곰인형이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한국테디베어협회 남기의 테디마을(대구시 중구 포정동, www.teddyvillage.co.kr). 크고 작은 인형들이 쇼윈도에 진열돼 있는 작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20, 30대 여성 7명이 바느질에 여념이 없었다.

천, 가위, 실, 바늘, 솜 등이 널려있는 탁자에 앉아 열심히 손을 놀리는 여성들. 서서 만드는 걸 지켜보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7평 남짓되는 작은 공간은 마치 인형의 나라에 와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귀엽게 웃고 울고 졸리운 모습으로 앉아있는 곰인형들. 가만히 들여다 보니 강아지, 원숭이 얼굴같은 모양 등 표정들이 제각각이었다.

"곰인형을 만들려면 피를 많이 봐야 돼요".

인형의 몸 안으로 솜을 채워넣고 있던 주부 배영하(34)씨는 바늘에 수도 없이 손이 찔려야 곰인형이 완성된다며 웃음지었다.

요즘 테디베어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배씨는 초등학생, 유치원생인 두 아들을 집에 놔두고 엄마, 테디 간다하곤 이곳을 들락거린다.

집에서 만들 수도 있지만 직접 설명을 들어가며 배우면 그만큼 실력도 쑥쑥 늘기 때문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수다 떠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수다를 떨며 손을 부지런히 놀리다 보면 어느새 곰인형이 하나 완성된다.

직장인인 김은미(28)씨는 요즘 밤낮으로 이곳을 찾는다.

빨리 곰인형을 만들고 싶은 마음에 퇴근 후는 물론 점심시간때도 인형 몸통에 팔, 다리를 붙이고 표정을 만들어 넣느라 짬이 없다.

인형을 만드느라 밤도 꼬박 새우기 일쑤인 김씨는 "소중한 나의 인형이 완성되는 모습을 생각하면 밤을 새도 하나도 피곤한 줄 모르겠다"며 인형을 만들고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해진다고 했다.

테디베어. 어릴 적 곰인형을 선물받은 기억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듯 하다.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 곰인형. 그런데 요즘 어른들 사이에서도 곰인형은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20, 30대 직장인, 주부 등 젊은 여성들은 곰인형을 단순한 장난감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곰인형은 기본이고 생활용품, 인테리어용품으로까지 그 활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주부 김영림(30)씨는 만삭의 몸으로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테디베어 유아용품을 직접 만들고 있다.

예쁜 곰인형의 모습을 한 목욕타월, 아기 키재는 자, 짱구베개, 모빌 등을 만들며 설레는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리고 있다.

주부 이혜진(30)씨는 아이들에게 주려고 테디베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가 내친김에 강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모헤어, 유리눈 등 고급 재료를 쓴 인테리어용 인형도 직접 만들면서 솜씨가 어설픈 학생들에게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일도 재미있어 한다.

남기의 테디마을 정재은(40) 원장은 "테디베어가 기존 완구 분위기에서 벗어나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생활용품은 물론 인테리어용품 등으로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직접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테디베어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자신만의 개성있는 인형을 만들 수 있는데다 실력이 늘면 수제 인형을 내다파는 등 부업이나 소규모 창업도 가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테디베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지난 90년대 말. 역사가 10여년정도밖에 안됐지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동호회가 수백개에 이르고 전국 각지에 테디베어를 배울 수 있는 전문점이 수백 곳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지역에서 테디베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테디베어 전문점 3군데와 백화점 문화센터 등이다.

테디베어 재료비는 원단의 재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초급 취미반의 경우 곰인형을 하나 만드는데 드는 재료비는 7천∼2만여원선. 평균 1만5천원선으로 잡으면 된다.

테디베어 전문점에서는 월 3만∼5만원 정도 받고 작품을 직접 만들면서 배울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10작품을 골라 만드는데 8만원 정도 들기도 한다.

손재주가 있는 여성이라면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재료를 구입해 간단한 동전지갑, 열쇠고리 등은 패턴(본)을 보고 혼자서 만들 수도 있다.

정 원장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하루 3시간씩 1주일 정도 투자하면 곰인형을 하나 만들 수 있다"며 "한달 정도 배우면 다양한 표정의 테디베어 등 만들 수 있는 게 수십가지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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