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도 경쟁력이다-(5)직장서 사라지는 중장년

입력 2004-01-27 09:02:41

한창 나이에 등산과 바둑으로 여생을 보내야 한다니….

지난 2월 기업체의 간부로 근무하다 퇴직한 전모(56)씨는 최근 급격히 늙어가는 것을 느낀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등산 등 취미생활이 전부다.

아직 5, 6년 정도는 거뜬하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에선 먹혀들지 않았다.

무력감마저 느낀다.

그런데도 주변의 시선은 냉담하다.

40대에 쫓겨나는 판에 할만큼 한 것 아니냐는 것.

그렇다고 노후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의 학비에 경조사비, 학자금 대출 상환금, 보험료, 각종 공과금 등으로 지출되는 돈만 해도 월 200만원이나 된다.

퇴직전에도 빠듯했는데 지금은 죽을 지경이다.

얼마전부턴 가계부마저 마이너스를 긋고 있다.

전씨는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진 않지만 자식들 혼사를 생각하면 집을 내놔야 할 판이라며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일했는데 너무 허무하다고 했다.

지난 1998년 퇴출당한 전직 은행지점장 차모(55)씨는 피자가게를 개업했다가 3년만에 시설투자비 등 1억원을 날리고 결국 문을 닫았다.

평생 직장생활만 한 사람이 사업을 한다는게 좀 께름칙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다른 마땅한 일이 없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봉급쟁이를 한 50대가 할 수 있는 일은 퇴직금으로 개인 사업하는 것 뿐입니다.

40대 후반부터 회사로부터 압박을 받는 판에 어디서 50대를 고용하겠습니다.

요즘은 은행 지점장도 40대가 주류고 30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지요"

한 통신회사 과장인 박모(50)씨도 40대 후반부터 보직해임 등의 퇴직압박을 받는게 현실이라며 퇴직 후 개인 창업한 입사 동기들 중 열의 아홉은 망하는 걸 보니 퇴사하면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50대 실직은 이제 우리사회에서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40대 실직자는 물론 20, 30대 백수가 수두룩하다.

60세 이상 고령자 일자리 얘기는 꺼내기가 민망할 정도다.

초고령화 시대를 앞두고 65세까지 법적 정년을 연장하자느니, 연령에 제한을 두지 말자느니 하며 대책 고심에 동분서주하는 일본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에 최근 정부가 강제로라도 정년을 만60세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히기에 이르렀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50~59세 실업자 수는 지난해 1/4분기 6만9천명으로 2002년 4/4분기 4만8천명보다 2만명이나 늘었다.

우리나라의 임금근로자가 실업자가 되거나 자영업자 등 비임금근로자로 전환되는 연령이 평균 35세로 OECD 국가 평균보다 10년이나 빠른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구종합고용안정센터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후 안정세에 접어들었던 50대 명예퇴직자들의 실업급여 신청이 최근 다시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500인 이상 대기업에서 일하는 40대 후반의 남자 직원 중 5년 후 남아 있을 확률은 절반 정도인 54.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50세 근로자가 55세까지 계속 근무할 수 있는 확률은 29.5%에 그쳤다.

또 노동부가 고령자고용촉진법상의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체 1천500여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대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상실자 중 정년퇴직한 경우는 2.9%에 불과했다.

이는 기업체들이 경력이 아니라 연령, 근속연수를 인사관리 기준으로 삼기 때문. 많은 기업들이 55세 정년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명예퇴직으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절반 이상이 명예퇴직이나 정리해고 시 연령을 고려한다고 응답한 반면 직원 채용 시엔 연령을 제한한다고 답했다.

신규 채용시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 업체는 전체의 50%에 달했다.

이는 고연령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에 비해 능률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박사는 생산성에 비해 임금수준이 높다는 이유로 정년까지 근무하지 못하고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조기퇴직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서 정년제는 더이상 정년 연령까지 고용을 보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의 장지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돼 고령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가 충분치 못하고 노후생활자금에 대한 근로자들의 준비도 부족한 실정이라며 이때문에 조기퇴직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됐다고 했다.

이에 따라 연공서열식 보상 및 인사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한 진전되고 있는 만큼 더이상 고용에 있어 연령 차별이 있어선 안된다는 것. 이를 위해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도입 등 지속 고용 및 재고용 등의 대안을 모색하고 나아가 연령차별을 금지해 고용안정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연령에 따른 퇴직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지난 1967년 미 의회가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한뒤 70세까지 정년이 연장됐다가 87년부터는 정년제가 완전 폐지됐다.

물론 채용시에 나이 제한을 두는 업체도 없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연공에 기반한 보상체계에서 성과급제로 전환하는 한편 연령차별을 폐지하는 등 고령층에게 충분한 능력 개발 및 발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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