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 사로잡는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 현명호(33)씨

입력 2004-01-26 11:21:59

지난 15일 프로농구 대구 오리온스와 부산 KTF의 경기가 열리던 대구체육관.

오리온스가 78대61로 리드한 채 3쿼터가 종료되던 상황. 치어리더가 흥을 돋우기 위해 코트로 뛰어나가고 선수들은 벤치로 들어가는 시끌벅적한 상황에서 어디선가 스쳐지나가듯 들려온 짧은 멘트 하나.

"오리온스는 다 있는 데 하나가 없습니다.

약점이 없습니다".

순간 관중들은 모든 시선을 한 곳에 집중했고 벤치로 들어가던 오리온스 선수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재치있는 이 한 마디에 기자석에서도 여기저기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국내 최대 겨울 스포츠인 프로농구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대구체육관에는 장내 아나운서 현명호(33)씨가 있어 더욱 즐겁다.

여중고생 팬들의 열광과 댄스음악 등으로 가뜩이나 귀가 얼얼할 만큼 시끄러운 실내체육관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는 자칫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현씨는 순발력 있는 한마디 한마디로 관중들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든다.

"순간순간 변하는 경기 흐름을 잃지 않으면서 타이밍에 맞는 적절한 멘트를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장내 아나운서 4년차인 그는 처음에는 농구를 전혀 몰라 옆에 앉은 기록원에게 질문을 한 뒤 말을 하는 등 진땀을 흘렸지만 지금은 전문가 뺨칠 정도의 도사(?)가 됐다.

경기 도중 '오리온스가 3점슛이 터질 때가 됐다'는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골이 들어가고 '역전승할 것 같다'는 감이 오면 느닷없이 골이 터져 경기를 뒤집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경기 흐름을 봐가며 멘트와 목소리 톤을 스스로 조절한다는 것.

대학 1학년때부터 아르바이트로 각종 축제의 사회를 보기 시작한 그는 현재 6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팬카페까지 있을 정도로 지역에서 꽤 유명한 이벤트 MC이다.

김제동이 활동하던 대구·경북전문진행자 모임인 '리더스'의 회원인 그는 음악 밴드 '국민학교'의 보컬도 맡고 있다.

다음달 4일 '국민학교'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그에게 정작 궁금한 수입을 묻자 "일반 직장인보다는 더 많이 벌어들입니다"며 분명하게 말했다.

2월부터 시작되는 각 대학의 행사만해도 상당한 수입이 된다는 것.

이런 그에게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란 직업은 비록 수입은 많지 않지만 '프로농구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만은 가득하게 만든다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싶다는 그는 "승부에 집착하기보다는 농구 그 자체를 즐기는 팬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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