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탈리아의 작가 지오바니 보카치오(1313~1375). 근대소설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그의 작품 중 '데카메론'을 제외하고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전무하다.
때문에 최근 출간된 '유명한 여자들'은 '데카메론' 이후 처음으로 국내에서 출간된 보카치오의 저작이란 점에서 우선 흥미롭다.
'유명한 여자들'(임옥희 옮김.나무와 숲 펴냄)은 서구 문학사상 최초의 여성 전기 선집이다.
창세기의 이브부터 14세기 시칠리아 여왕 요안나까지 유명한 여성 106명의 삶을 다루었다.
생애의 마지막 20년 동안 수많은 가필.첨삭.재배치.텍스트 수정을 거쳐 완성했을 정도로 보카치오는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먼저 우리는 보카치오가 책의 제목에 붙인 '유명한'이란 수식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카치오는 선악의 윤리적인 차원을 떠나 어떤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든 유명한 여자들을 망라했다.
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을 세속적인 여성으로 해석해 냈으며,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에 대해서도 본인의 관점에 따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미의 여신 비너스에 대한 보카치오의 해석은 매우 독특하다.
보카치오에게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는 눈부신 미소로 남성들의 눈을 멀게 한 '여성'이었다.
맹목이 된 남성들과의 연애 편력으로 말썽과 분란이 끊이질 않았던 팜므파탈이 바로 비너스였다.
보카치오의 비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수치심을 덜어 주면서 방종을 좀더 즐기기 위해 비너스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지저분한 것을 고안했다.
비너스는 최초로 공창(公娼)을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결혼한 여성도 사창가로 끌어들였다고 한다".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에 대해 보카치오는 권력욕과 탐욕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클레오파트라는 그녀의 선조들과 매력적인 용모를 빼면 영광을 누릴 진정한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남편이기도 한 동생을 죽이고 왕국을 차지했으며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권좌를 지키는 등 타락한 권력욕을 가졌다고 보카치오는 질타했다.
반면 지혜와 강인함 등으로 존경받는 여성들도 '유명한 여자들'에 등장하고 있다.
보카치오에 의하면 여신 미네르바는 지략가이자 발명가였다.
사륜 마차, 갑옷, 무기, 전략, 베짜는 법, 올리브 오일, 악기, 숫자 등 엄청난 것들을 발명해 경외감을 가진 대중들이 여신으로 받들어 모시게 됐다는 것이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딸 폴릭세네에 대해 보카치오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녀의 강인함을 칭송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보카치오와 그가 살던 시대에 여성에 대한 중세적인 태도가 근대적인 관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농사짓는 법을 발명해 농경 생활을 가능하게 해준 여성, 약초를 캐서 질병의 고통을 완화시켜 준 여성, 로마자를 만들어 인류 역사의 기록을 가능케 한 여성 등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던 여성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냈기 때문이다.
탄탄한 플롯에 힘입어 한 편, 한 편 마치 잘 짜여진 단편을 읽는 것과 같은 재미를 안겨주는 것도 '유명한 여자들'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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