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아직은 음력설인 모양이다.
제수마련을 위한 종종걸음들로 재래시장에도 활기가 돌고, 고향의 부모형제에게 줄 선물들을 고르는 얼굴엔 직장생활의 피로감도, 타향살이의 서러움도 사라진 듯 미소가 어려있다.
환히 불 밝힌 동네 떡방앗간들은 겨울밤이 이슥토록 가래떡 뽑느라 분주하다.
강정용 쌀튀밥을 쏟아내느라 연신 펑, 펑 폭음을 터뜨리는 뻥튀기 소리와 더불어 명절 정취를 더해준다.
지금의 기성세대에겐 설 즈음의 떡방앗간 풍경이 한 폭의 파스텔화처럼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밤새 불린 쌀을 고무대야에 담아 방앗간으로 가져가면 이웃마을에서 새벽길을 부지런히 걸어온 아줌마와 할머니들로 벌써 방앗간 안은 북적였고 쉭, 쉭, 소리를 내며 하얀 김을 뿜어대는 떡시루는 군침을 삼키게 하였다.
쌀 1말쯤 담긴 커다란 대야, 닷되 정도의 대야, 싸라기가 섞인 쌀이 담긴 작은 대야 등 크기가 다른 대야들이 구불구불 줄지어 있었다.
차례가 될때까지는 한나절도 더 걸렸다.
아이들은 심심하여 몸을 꼬기도 하고 어른들끼리 나누는 구수한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깜박거리며 졸기도 하였다.
모두들 점심도 거른채 기다리는 터에 떡 익는 내음이 코를 간지럽힐때면 배가 더 출출해져서 침만 꼴깍거리곤 하였다.
인정많던 시절이라 자기차례가 된 사람들마다 맨 처음 뽑혀져 나온 가래떡 몇마디씩을 가위로 썩둑썩둑 잘라 배고픈 이웃들에게 건네주었으므로 허기는 면할 수 있었다.
그때 한 토막 얻어먹던 뜨끈하고 졸깃한 가래떡의 맛이란…. 또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하얀 김이 모락거리는 가래떡을 머리가 무겁도록 이고 돌아올 때의 가슴 뿌듯한 만족감이란….
차례가 늦어져 밤이 이슥해서야 떡을 뺀 엄마들은 기다리다 잠든 아이들을 깨워 기어이 떡을 먹이곤 했다.
단지 속에 갈무리해둔 홍시나 강정을 만들기 위해 밤새 고은 조청에 찍어먹던 그 맛은 요즘의 유명 제과점 케이크맛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이틀 두었다 꾸덕하게 마르면 할머니.엄마.고모 등 집안의 여자란 여자는 모두 동원돼 한석봉의 엄마처럼 능숙하게 떡을 썰었다.
솜씨따라 길쭉길쭉, 동글동글, 납닥납닥,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밤 늦도록 또각거리던 도마소리와 간간이 터져나오던 웃음소리는 섣달 그믐밤을 그렇게 넉넉하게 만들어주었다.
"떡국떡 있어요? 안 샀으면 좀 줄려구…". 지인의 전화에 퍼뜩 지난 시절의 떡방앗간 풍경이 떠오르는 것은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일까. 설날, 한 그릇의 떡국 속엔 그렇게 많은 추억들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전경옥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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