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대변인실은 정치판에서 국민과 만나는 최일선 부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때문에 장수(長壽)하는 대변인도 잘 없고 당직자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대변인실 근무 경력만 32년이 되는 한국정당사의 산 증인이 있다.
대구출신의 한나라당 김숙자(金淑子.51.사진) 부국장
그녀는 지난 1972년 공화당에서 시작해 민정, 민자, 신한국, 한나라당을 거치면서 대변인실서만 근무했다.
모셨던 대변인만도 30명에 달한다.
평균 1년에 1명꼴로 대변인이 바뀐 셈이다.
그런 그가 오는 26일로 당을 떠나게 됐다.
"당에 더 남아 있고 싶었지만 병세가 깊어진 노모(88)를 곁에서 모시기 위해 사표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기억에 남는 대변인이 누구인지를 물어 보았다.
한참 뜸을 들인 뒤 강재섭(姜在涉) 의원을 떠올렸다.
"어려울 때 많은 도움이 됐고 동향이라 마음이 통하는 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최장수 대변인인 박희태(朴熺太) 의원과 손학규(孫鶴圭) 경기도지사, 김철(金哲) 전 의원도 꼽았다.
막말과 비방 일색인 정치논평에서 그나마 '품격'을 지녔던 논평도 있다고 했다.
그는 "민정당 시절 대학생들이 당사를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당시 대변인인 박희태 의원은 '귀여운 아가들이 당을 방문했다'며 애교스런 논평을 써 어수선한 당 분위기를 일순 바꾸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80년 5.17 비상계엄 당시 공화당사에 들이닥친 군인들을 보고 깜짝 놀랐던 일, 첫눈이 쏟아지던 90년 겨울 터져 나왔던 3당 합당소식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회고했다.
김 부국장이 사의를 표하자 국회의원들은 물론 많은 당직자들이 만류했다.
하지만 노모 간병을 위해 떠난다는 그녀를 붙잡지는 못했다.
박진(朴振) 대변인은 "당에 남아 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면서 "그러나 그녀는 떠나지만 한국정당사의 산 증인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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