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인 제가 게임을 하는 게 신기한가요? 사람들이 어떻게 게임을 하느냐
고 물어보는 게 오히려 당황스러운데요."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청소년이 피나는 노력으로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마스터해 대스타 프로게이머와 멋진 승부를 벌이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시각장애인 학교인 서울맹학교 고등부 1학년 이민석(17)군이 스타크래프트를 처
음 접한 것은 지난 2000년.
약시인 한 학교 선배가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다 게임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재미있다고 느낀 이군은 곧 게임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군은 곧 게임에 등장하는 수십가지가 넘는 건물과 유닛을 지정한 키보드 버튼
을 다 외우고 이들 각각의 고유한 소리를 구별, 보지 않고도 건물과 유닛을 다룰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게임상의 지도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확한 위치에 건물과 유닛을 배치하
고 움직이는 것이었으나 이군은 게임지도 하나를 선택해서 머릿속에 그대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샅샅이 외우기 시작했다.
결국 6개월간 매일 2∼3시간 정도 게임을 연구한 끝에 지도를 보지 않고도 그
위에서 건물과 유닛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게 됐고 그 이후 실력이 부쩍 늘기 시작
했다.
이군은 곧 인터넷으로 진출해 다른 일반인 게이머들과 대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만만치 않은 실력의 맹인 게이머가 있다'는 소식은 스타크래프트 제작사인 미국 '
블리자드(Blizzard)'사에까지 전해졌다.
블리자드사는 지난 연말 스타크래프트의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성우가 직접 녹
음한 음성 연하장을 이군에게 보내는 등 눈여겨오다 게임축제 '블리자드 월드와이드
인비테이셔널' 행사를 한국에서 개최하면서 이군을 초청해 '스타크래프트의 황제'
임요환 선수와 특별경기를 마련했다.
17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임 선수와 이군의 경기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데 어떻게 게임을 하겠느냐'는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군은 핸디캡 차원에서
시작 3분간 눈을 가리고 게임을 하는 임 선수의 진영을 초반부터 몰아쳤다.
결국 20분간의 치열한 전투끝에 지도 구석으로 도망친 임요환 선수가 다시 살아
나 역전승했지만 행사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이군에게 아낌없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게임직후 이군과 마주앉은 임 선수는 "간신히 이기기는 했지만 경기내내 '말도
안돼. 혹시 눈이 보이는 것 아냐'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냈는지 존경스럽다"고 감
탄했고 이군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니 믿겨지지 않아
요"라며 기뻐했다.
임 선수와 앞으로 계속 연락하기로 약속한 이군은 그러나 앞으로는 게임을 줄일
생각이다.
"실용음악과에 진학해 작곡.편곡일을 하는 게 제 꿈이거든요. 그렇게 하려면 이
제 게임은 줄여야지요."
사실 이군은 최근 음반을 낸 '좋은 이웃'이라는 5인조 CCM(현대기독교음악) 그
룹에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면서 피아노.기타.베이스.드럼까지 척척 연주하는 음악
도.
"장애인이니까 못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하나하나 도전하면 매우 재미있어
요. 시련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니까 자신감을 갖고 다른 장애
인 친구들도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이 군은 환하게 미소지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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