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어도 먼지 안나게 해라..."
설을 앞두고 행정자치부와 총리실 등 중앙 부처에서 강도높은 감찰에 나서면서 공무원들이 긴장하고 있다. 특히 이번 감찰이 암행 수준이 아니라 캐비넛과 책상 서랍까지 뒤진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 지자체 등 기관마다 책상 정리(?)에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경산시청에서는 공무원이 금품을 받는 현장이 암행감찰반에 적발되기도 해 설밑 공직사회가 얼어붙고 있는 것.
대구의 한 구청은 지난 15일 '신정부들어 첫 감찰인 만큼 감찰반이 서랍과 수첩이나 지갑까지 들춰 볼 우려가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라'는 내부 훈령이 내려오면서 각 실과별로 종무식 뒤 남은 맥주캔을 치우고 서랍을 정리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다른 구청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한 구청간부는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있겠느냐"며 "손수건이나 식용유 한병도 절대 받지 말도록 직원들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16일 경산시청에서는 공무원 3명이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각각 90만원∼100만원상당의 상품권을 받는 현장이 국무조정실 공직기강합동점검반에 잡혔다.
점검반은 이날 오전11시쯤 건축과 ㄱ(42.건축7급)씨가 사무실로 찾아온 (주)ㄷ엔지니어링 김모 이사로부터 100만원(10만원권 10매)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받는 현장을 적발했다. 또 40여분 뒤 도시과 ㅈ(37.토목7급)씨가 구내식당에서 (주)ㅅ경산공장 조모씨로부터 100만원 상당의 상품권(5만원권 20매)을 받다가 점검반에 단속됐다.
점검반은 점심식사 후 산림녹지과 ㅂ(54.6급)씨가 사무실에서 골재 채취업자인 ㄱ산업 이모소장이 책상에 두고간 90만원(10만원권 9매) 상당의 상품권을 보관하고 있는 것도 적발했다.
그러나 이같은 감찰을 둘러싸고 인격권을 무시한 처사라는 비난도 터져나오고 있다. 점검반이 대구시 행정관리국장실과 대구건설본부장, 공무원교육원장 등의 서랍을 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복무기강 확립'도 좋지만 이는 사생활과 인격의 명백한 침해로 '너무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
이에 대해 16일 대구시청을 찾은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공무원에 대한 인격모독적 감찰은 문제가 있다"면서 "행정자치부 직원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어느 부처 직원이 그런 감찰을 한 것인지 알아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경북지역에서도 설을 앞두고 공직자들에 대한 암행감사가 강화된데다 '외교통상부 사태'로 인한 입조심 바람까지 불어 공직사회가 얼어붙었다.
최근 경북지역 지자체를 비롯해 경찰서 등 주요 관공서엔 총리실, 감사원, 행정자치부의 암행감사반이 내려와 선물수수 행위와 근무시간중 음주 및 자리 비우기 등 복무와 관련한 비노출 감찰활동을 펴고 있다. 이번 감찰은 어느 때보다 강도가 높다고 공무원들은 증언한다.
이 때문에 일부 기관장들은 퇴근 시간이후 관용차 대신 택시를 이용하는 등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김천지역 일부 기관장들은 "근무시간 이후까지 감시당한다고 생각하면 찜찜하지만 가능한한 사적인 볼 일을 삼가고 점심.저녁 등 식사약속도 자제한다"고 말했다. 김천시의 한 간부 직원은 "혹시 지인이나 선후배가 선물을 들고 사무실로 찾아올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경찰의 경우 본청의 암행감사반이 경북지역에 내려와 서(署) 단위로 비노출 감찰활동을 펴고 있다. 특히 경찰은 선물 안주고 안받기와 함께 최근 대통령과 관련된 루머를 이야기한 여경이 인사 조치되고, 대통령을 폄하했다는 이유로 외교부 간부에 대한 징계 결정 등의 영향으로 아예 입을 닫고 살자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경찰 한 관계자는 "간혹 사석에선 정치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으나 최근 분위기가 냉랭해지면서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며 "분위기가 너무 얼어붙은 상태"라고 푸념했다.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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