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는 시어머니와 장모를 따로 부르는 말이 없다.
'법적인 어머니'라는 뜻인 '마더 인 로(mother in law)'로 통한다.
동서.처남.매형도 모두 '브라더 인 로(brother in law)'다.
시누이와 올케도 똑같이 '시스터 인 로(sister in law)'로 불린다.
이렇듯 서양에서는 처가와 시댁이 명목상으로 동등한 지위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고부간의 갈등이 아닌 사위와 장모 사이의 갈등이 사회 문제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유머 가운데는 '창세기에 이브는 800세를 살았고, 아담은 930세까지 살았다.
왜 아담이 장수할 수 있었을까?'에 '장모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정답'이 나돌 정도다.
▲우리는 서양과는 가족문화가 사뭇 달랐다.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는 말이 있고, '뒷간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도 있다.
'사위 사랑은 장모' '사위는 백년 손님'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 절을 한다'는 말들도 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가 크게 늘어나고, 전통적인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처가 덕을 못 보면 모자라는 인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달라져 버렸다.
▲옛말들은 이제 옛말일 뿐이다.
결혼한 뒤 남편의 부모보다 아내의 부모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고, 정서적 유대감도 남편보다 아내 쪽의 형제자매가 훨씬 높아졌다.
여성부가 한국여성개발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경제적 지원은 아내의 부모(18.1%)가 남편의 부모(11.1%)보다 높다.
어려울 때 형제들의 정서적 지원도 아내 쪽이 22.6%, 남편 쪽이 4.2%로 나타났다.
▲부모를 모시는 비율은 11.6%, 안 모시는 경우는 87.7%로 핵가족이 정착된 가운데 남편의 31.7%가 한 달에 한두 번 이상 장인.장모를 만나 아내가 시부모를 만나는 비율(40.1%)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부모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는 경우는 남편 부모 쪽(45.5%)이 아내 부모 쪽(14.8%)보다 3배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20, 30대 부부 10쌍 중 4쌍이 경제 문제나 고부 갈등 등을 부부가 풀지 못하면 이혼하는 게 낫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조사는 딸의 부모가 결혼한 딸과 가까이 살며 밀접하게 교류하는 선진국처럼 돼 가며, 장인.장모가 출가한 딸의 생활에 적극 개입하는 '가족문화의 권력 이동' 현상을 시사한다.
정부도 호주제를 폐지하고 부부를 중심으로 생계를 같이 하는 혈족까지 가족의 범위를 확대하려 한다.
전통적인 가족상이 물러서는 자리에 서구적인 가족 관계가 들어서는 사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서양처럼 '고부 갈등' 대신 '사위.장모 갈등'이 심각해지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는지….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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