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부부-(3)깨어진 결혼의 법칙

입력 2004-01-16 10:05:07

'황신혜는 연하남을 좋아한다?'

톱스타 황신혜(41)와 8세 연하인 안재욱이 연상연하 부부의 삶을 그려내는 TV 드라마 '천생연분'이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극중에서 6세 연하인 동생 친구와 결혼하는 황신혜는 실제로 3세 연하 남편과 살고 있다.

연상녀-연하남의 사랑이야기는 2, 3년 전부터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연하 남자와 사귀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풍조도 생기고 있다.

이를 두고 '드메 신드롬'이라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연상의 여성에게만 사랑을 고백하고 다닌 '드메'라는 청년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용어)

이런 현상이 젊은이들의 일시적 '유행코드'나 '발칙한 도발'일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2년 대구지역 여자 연상 결혼율은 전체 초혼의 10%로 1992년에 비해 2% 증가했다.

더불어 동갑 결혼율도 2002년 14%로 같은 기간 6% 증가했다.

이에 반해 남자 연상 결혼율은 75%로 여전히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1992년에 비해 8%나 줄어들었다.

◆4세 차이는 궁합도 안본다?

사실 조혼(早婚) 풍습이 있었던 시절에는 연상 여성과 연하 남성의 결혼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생활이 확대되면서 '능력 있는' 신랑과 '앳되고 참한' 신부의 결혼이 이상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4세 차이(남성 연상)는 궁합도 보지 않는다"는 속어가 생겨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학상 어떤 신빙성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회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도 이 말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이는 조언이다.

남성과 여성은 남성의 군복무 등으로 3, 4년의 사회적 연령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0년 무렵부터 연상녀-연하남 커플들은 일종의 문화현상처럼 크게 늘고 있다.

결혼하는 남녀의 연령차이보다 더 가파른 변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초혼남과 재혼녀의 결혼율'이다.

1998년부터 대구시의 초혼남과 재혼녀의 결합(672건) 건수는 재혼남과 초혼녀의 결합건수(569건)를 앞질렀다.

1990년 초혼남과 재혼녀의 결합은 382건이었으나 2002년 658건으로 늘었고, 재혼남-초혼녀의 결합은 734건이었던 것이 435건으로 줄었다.

이는 1996년 초혼남-재혼녀의 결혼율이 재혼남-초혼녀의 결혼율을 앞지른 전국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흔들리는 결혼의 일반법칙

이와 같은 변화는 일차적으로 남녀관계 전반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바뀐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결혼에 있어 남성의 연령 우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경제력, 학력, 신체조건 등에서 남성이 우위에 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종의 권위적인 '질서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에 대한 권위적인 '질서의식'은 젊은이들에게 별 매력있는 지침이 되지 못한다.

요즘 젊은 남성들은 여성도 대등한 가정 경제의 주체일 때 자신들의 실익이 크다는 것을 잘 안다.

이런 젊은 남성들은 더 이상 많은 짐을 혼자 지고 가는 대가로 주어지는 고독한 권한을 원치 않는다.

또한 젊은 여성들은 책임을 나누어 질지언정 권한과 자유를 박탈당하는 삶은 거절한다.

연상녀-연하남의 결합은 이런 젊은이들의 요구를 상당히 만족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세 학번 아래인 신입생 남자 후배와 연인이 된 여대생 B(23)씨는 "남자선배들과 사귀면 아무래도 남자가 관계를 이끌어가려는 면이 많죠. 그렇지만 우리는 오히려 내가 우세하다고 느낄 만큼 평등해요"라고 말했다.

◆'남성우위'의 신화는 여전

그러나 여전히 남성이 우위인 것이 자연스럽다는 '질서의식'은 잠복하고 있어 이들 연상녀-연하남 커플들에게 위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학창시절 만나 연애하는 여자 연상 커플들의 경우 여성이 먼저 사회에 진출해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남자보다 앞서기 시작하면서 연인과 마찰을 빚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재학 기간을 포함해 4년 이상 두 살 연하의 남성과 사귄 S(29.여)씨의 경우 직장을 다니면서 연인과 마찰을 빚다 결국 결별했다.

"학창시절에는 마냥 동등한 관계가 좋았지만 막상 결혼할 나이가 되니까 남자가 갖추어야 될 일반적인 조건들이 걸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결혼할 나이가 됐는데 남자친구는 전혀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고, 남자친구도 내 사회생활을 많이 불안해했거든요".

S씨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가장 문제라고 했다.

여전히 '남자 〉 여자'의 의식이 뿌리 깊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여자 연상 커플들의 호칭에도 잘 드러난다.

연하의 남성들은 연인이 되는 순간 '누나'라는 호칭을 즉각 포기하고 '자기'라고 부르거나 '야', '○○야'로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이에는 밀리더라도 다른 것에서는 절대 밀리고 싶지 않다'는 남성들의 사회적 심리 탓이다.

여성들도 동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남성을 원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전적으로 기댈 수 있는 '강하고 능력 있는' 남성에 대한 선망을 가지고 있다.

◆나만의 결혼법칙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들만의 결혼 법칙을 선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여자와 남자의 만남에 관한 일반적인 법칙을 폐기하는 대신 각자 형편에 맞는 개별적이고 합리적인 법칙을 만들어가는데 더 큰 미덕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연상녀-연하남의 결혼이나 초혼남-재혼녀의 결합은 모두 이런 개별적이고 합리적인 '자신의 형편에 맞는' 법칙에 따른 데서 비롯되는 결과이다.

이런 개별적이고 합리적인 법칙의 선택과 당당한 실행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은 남녀관계의 전반적인 평등 추세와 더불어 인터넷 매체를 통한 동류집단의 교류이다.

예전에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들의 사랑을 공개할 수 없었던 데 반해, 요즘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비슷한 사연을 가진 커플들끼리 서로의 사랑을 격려하고 축복해주는 일이 쉬워지면서 현실에서의 난관 극복에 힘을 얻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연상연하'로 검색되는 카페가 200여개나 될 만큼 이들의 활동은 활발하다.

어떤 결혼의 법칙을 선택하든 관건은 개인의 행복이다.

혹시 우리 사회가 이러저러한 결혼의 일반 법칙과 행복의 일반 잣대를 들이대며 개인의 행복에 걸림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걸림돌을 쉴 새 없이 무시하고 싸우고 나서야 힘들게 자신들의 행복을 일구었다는 네 살 여자 연상인 한 커플의 이야기는 드라마 '다모'의 한 대사와 비슷했다.

"길이 아닌 길이다".

"길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있단 말이오. 한 사람이 다니고 두 사람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곧 그것이 길이 되는 법".

박경(대구사회연구소 연구원 parkk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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