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각국의 설맞이 풍속

입력 2004-01-15 09:00:16

*가족끼리 오순도순 무병장수, 만복기원

'궁시파차이(恭禧發財.돈 많이 버세요)'.

중국인들의 새해 인사다.

사는 곳은 달라도 새해를 맞는 마음은 어느 민족 할 것 없이 새롭고도 반가운 일인가 보다.

설날의 호칭이나 세시풍속은 조금씩 다르더라도 새해 첫 날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함께 들며 만복을 기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의 풍속.

특히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양권에서는 세뱃돈, 덕담, 민속놀이 등 우리 나라와 흡사한 설날 풍속이 많다

◇중국=음력 정월 초하루 설을 춘절(春節.춘지에)이라고 부른다.

춘절은 중국사람들이 가장 거창하고도 요란하게 지내는 전통 명절이다.

중국의 설은 우리네 풍속과 비슷할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잊었거나 잊혀지내고 있는 많은 풍속을 간직하고 있다.

그믐날에는 밤새도록 전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수세(守歲)'풍습이 있다.

저녁 무렵이면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고 만찬을 하는데 식사가 끝나면 바둑이나 마작 등을 즐기고, 밤 12시 제야의 종이 울리면 귀신을 쫓고 풍년을 기원하는 폭죽을 터뜨린다.

자정이 지나면 가족들은 연장자에게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절을 올리고 함께 만든 물만두(자오쯔.餃子)를 먹는다.

중국도 설날 아침이면 세뱃돈을 준다.

'압세전(壓歲錢)'이라고 부르는 세뱃돈은 경사를 상징하는 붉은 색 봉투(훙바오.紅包)에 덕담을 쓰고 빳빳한 새 돈을 넣어 준다.

설날에는 신춘과 관련된 글귀도 붙인다.

이 풍습은 '도부(복숭아나무에 귀신을 좇는 신의 이름이나 상을 그려 복을 기원하는 풍습)'에서 기원했는데 '춘조' '두방' '복'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입춘대길'과 같은 맥락이다.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는 복(福)자와 재(財)자. 복자는 거꾸로 붙인다.

이는 '도복(倒福.복을 거꾸로 하다)'과 '도복(到福.복이 온다)'의 발음이 비슷해 복자를 거꾸로 붙이면 복이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홍, 녹, 황색 색종이로 상스러운 모양을 만들어 창이나 문짝에 붙이는 전지풍습도 있다.

중국의 설 음식은 대단히 풍성한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만두, 두포(팥빵), 연고(설떡), 미화당(쌀엿), 두부, 전퇴(전병), 유각(튀김과자), 탕원(알심이를 넣은 탕) 등이 있다.

만두소에 돈이나 사탕 혹은 땅콩 등을 넣어 그것을 골라먹는 사람에게는 새해에 특별한 복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일본=가는해의 나쁜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행복하고 기쁜일만 맞이하겠다는 소망으로 12월 28일이나 30일에 현관, 기둥 등에 매실로 예쁘게 장식된 소나무를 걸면서 설은 시작된다.

(가도마쓰).

일본은 새해가 되면 '쇼가쓰(正月)'라고 불리는 신년 축제를 즐긴다.

정월 초하루부터 초사흘까지이며 초이레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쇼가쓰의 첫날인 초하루에는 아침 일찍 새해의 첫 물을 푸고, 신불(神佛)을 모신 집에서는 참배를 한 뒤 '토소'라고 하는 특별한 술과 '조오니' 떡국을 먹는다.

새해를 앞둔 12월 30일은 미소카(晦日)라 하여 집안 대청소를 하고, 31일은 '오미소카(大晦日)'라 하여 명절 음식인 오세치요리 준비로 분주하다.

'오세치요리'는 우엉, 연근, 새우, 다시마, 검은 콩, 무 따위를 국물 없이 건더기로만 달콤하게 조리해 네모난 찬합에 담아놓은 것으로 설 연휴 동안에 먹는다.

설날 음식도 우리 만큼 풍성하다.

12월 31일에는 새해에도 건강하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소바(메밀국수)'를 먹는다.

가족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먹는 소바는 평소에도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별미 음식. 또 설날 아침에 깨끗한 옷으로 입고 온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데 이 때 마시는 술이 '도소'다.

불로장수를 의미하는 이 술을 마시면 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건강에 좋다고 한다.

3회에 걸쳐서 나누어 마시는데, 젊음을 얻는다는 의미로 연소자부터 마시는 지방도 있다.

된장국물로 만든 '떡국'도 설날 음식. 지방마다 쓰는 재료가 조금씩 다르지만 반드시 된장을 넣고 끓이며, 그 속에 찹쌀로 만든 떡 알갱이를 넣는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떡국'을 먹어야만 한 살 나이를 더 먹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뱃돈과 신사참배는 일본 설의 대표적 풍속. 세뱃돈을 그냥 건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치부하는 일본 사람들은 새해를 상징하는 연, 매화 등이 그려진 봉투에 세뱃돈을 건넨다.

섣달 그믐날 밤을 신사에서 보내고새해 첫 날 신사참배(하쓰모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그믐날 참배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 후 다시 설날에 참배를 하러 가는 경우 등 지방이나 가정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설날놀이는 줄다리기와 연날리기가 있다.

그믐날에 칡덩굴을 꼬아서 만든 줄로 마을을 동서, 또는 남북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마을의 화합과 풍작을 기원하는데 줄다리기가 끝나고 나면 바다나 강에 줄을 끊어서 흘려보낸다고 한다.

아동들의 설 놀이로는 우리의 제기차기와 흡사한 '하네쓰키'와 연날리기가 있다.

하네쓰키는 무환자 나무에 구멍을 뚫고 새 깃털을 꽂은 제기 비슷한 것을 나무로 된 라켓 비슷한 것으로 배드민턴처럼 치고 노는 놀이다.

같이 치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얼굴에 먹물로 낙서를 하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베트남도 12간지를 쓰는데 우리와 다른 것은 토끼 대신 고양이, 양 대신 염소 띠가 있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양력설 보다는 음력설을 훨씬 더 중시한다.

그믐날 사람들은 집안 청소를 하고 '세찬(돼지고기와 오리알을 불에 구운 음식, 떡, 여러가지 잼 종류, 수박)'을 장만하면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 한다.

자정이 넘으면 복을 많이 받기 위해 사원에 복의 새싹을 딴다는 의미로 하이록(Hai loc)을 하러간다.

베트남인들은 설에 반드시 수박을 준비한다.

손님들이 모인 가운데 수박의 가운데를 갈라 속살이 빨갛게 잘 익었으면 한 해 운세가 만사형통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길하다고 믿는다.

또 녹두와 돼지고기를 넣은 찹살떡 '바인 쯩'을 바나나 잎에 싸두었다가 손님들한테 대접한다.

설날 아침에 아이들은 설빔을 차려입고 부모나 친척에게 세배를 드리며 세뱃돈을 받는다.

어른들은 보통 집에서 친한 친구들과 같이 묵은해의 슬픈일과 기쁜일을 이야기하면서 술이나 차를 마신다.

청년 남녀들은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은사에게 세배를 다니는 풍습이 우리와 같다.

베트남인들은 설날 아침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때에 나쁜 일이 생기면 한해 동안 고난이 있을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복을 받기 위해 인품이 있는 분이나 아름다운 성함이 있는 사람을 초대한다.

Phuc(福), Duc(德), Tai(才), Loc(慶), Hung(興) 등이 좋은 이름이다.

또 베트남 사람들은 3, 5와 같은 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날은 불행한 날이기 때문에 설날을 지내고 4일 또는 6일부터 사업을 시작한다.

사진 찍을 때도 3명이나 5명은 잘 안 찍는다.

설날 사흘 동안 집안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도 전래풍습. 옛날 어느 상인이 좋은 식모를 얻어 부자가 되었는데 이 사람이 식모를 학대하자 식모는 쓰레기 더미에 숨어 버렸다고 한다.

상인이 쓰레기를 내다 버렸는데 그때부터 상인은 갑자기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쓰레기를 버리면 복이 달아 난다고 믿는다.

이춘수기자 zap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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