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넘자-(4)대구.경북 섬유(하)현지업체 CEO들의 해법

입력 2004-01-15 09:00:16

*'메이드 인 코리아'로 내수 뚤어라

'이제는 내수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중국섬유. 현지 토종업체들은 한국 섬유업체들의 활로는 '세계 최대의 중국 내수 시장에서 본토 기업들과 맞서 싸우는 것'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지에서 만난 국내 섬유업체들도 이같은 대명제에 동의해 하나같이 중국 내수 시장 개척을 새해 최대 경영 목표로 삼고 있었다.

남방그룹, 상성화섬, (주)KE 등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 섬유기업들과 삼성모방직(제일모직의 중국 법인명), 칭다오고합, 만주무역 등 중국에서 성공한 국내 섬유업체 CEO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구.경북 섬유업체들의 효과적 대중투자 전략을 모색해 봤다.

△쉬순씽 남방그룹 총경리

1988년 32세의 나이로 샤오싱시 커차우 부근에 직기 15대의 남방그룹을 창업해 설립 15년 만에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쉬순씽(47) 총경리.

하지만 승승장구를 거듭해 온 남방그룹도 아직 자체 브랜드가 없다.

매일 20t짜리 컨테이너 20개가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남방그룹 원단 창고. 뜻밖에도 취재팀은 대구 최대 직물업체인 (주)성안의 스타텍스 브랜드를 발견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폴리에스테르 원단이 버젓이 스타텍스 상표로 둔갑해 유럽, 중동 등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

쉬순씽 총경리는 "중국내 모든 섬유업체가 그렇듯 남방그룹 또한 한국, 일본 등의 유명 상표를 빌려(?) 쓰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성안의 스타텍스는 세계가 알아주는 최고급 원단"이라며 "브랜드 파워는 아직 중국이 한국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제품 동향 분석을 위해 대구.경북 지역을 수시로 오가는 쉬순씽 총경리는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이같은 브랜드 파워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섬유기업들이 아직도 칭다오 등지에서 임가공 방식에 주력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중국 내수 시장은 '13억 그 이상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중국 최대 원단시장인 인근 칭방성 시장만 해도 내수시장도 시장이지만 중동, 인도 등은 물론 유럽, 미국 바이어들까지 최소 5천여명의 원단 무역상들이 이 일대에 상주하고 있다는 것.

쉬순씽 총경리는 "아직 한국 제품들은 경쟁력이 충분하다"며 "임가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바로 이곳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브랜드 파워로 중국 내수는 물론 해외 원단 바이어를 공략하라"고 말했다.

△첸궈쌍 상성화섬 총경리

샤오싱시 5대 화섬업체 중 하나인 상성화섬 첸궈쌍 총경리는 "한국 섬유기업들의 기술력은 아직도 경쟁력이 충분하지만 진짜 중국에서 성공하고 싶은 기업들은 '합자 또는 합작' 형태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 기업의 힘만으로는 중국 내수시장을 개척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 중국 특유의 상술도 한국인들이 쉽게 이해하기 힘들고 현지 정부와의 관계 형성 또한 합작기업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실제 톈진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삼성모방직 경우 천진방적총공사와 75대 25의 합작을 통해 현지에 진출했다.

최경한 삼성모방직 경리는 "적당한 지분 조정을 통해 의사결정권만 확보할 수 있다면 합작 형태가 유리한 점도 적잖다"며 "톈진시의 전폭적 지원이 기업 경영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첸궈쌍 총경리는 차별화 소재 생산도 중국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차별화 소재라 하더라도 한국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아이템을 들고와선 무용지물.

그는 "화섬, 직물에 관한 한 몇몇 한국 기업을 제외하곤 중국 섬유업체들의 품질이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서도 경쟁력이 충분한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중국 섬유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KE 김겸진 부총경리

샤오싱시 빈해공업개발구 (주)KE는 지난해 11월 설립한 신생기업. 이곳의 부총경리는 갑을상숙 출신의 한국 기술자 김겸진씨다.

김 부총경리에 따르면 중국 섬유업체들의 경우 유럽, 일본제 섬유기계로 초 대량생산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기술, 관리 능력 부족으로 한국인 기술자를 초빙하는 경우가 적잖다.

국내 수도권 일대 니트업체 출신으로 샤오싱 5대 편직업체 중 하나인 채홍장의 이기철 부총경리가 대표적인 인물.

이들은 중국기업과의 적절한 기술제휴와 현지 한국인 기술자들을 십분 활용한다면 대구.경북 섬유업체들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고 제품을 100으로 본다면 중국 섬유업체들의 원단 품질은 0~100을 오락가락 하기 일쑤여서 균일한 품질을 자랑하는 국내 섬유기업들이 이곳에 진출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이들은 "성택, 소산, 칭방성 등 중국 내수 시장 중심지와 인접한 이곳 업체들은 일단 만들고 보는 초 대량생산체제를 지향하고 있다"며 "한국 섬유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이 일대 고급 시장 개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주홍 삼성모방직 총경리

"2004년 최대 목표는 중국 내수시장 공략입니다"

김주홍 총경리는 지금까지 삼성모방직의 경영전략은 크게 3번 바뀌었다며 올해는 본격적인 중국 내수시장 개척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1995년 톈진에 진출한 삼성모방직은 초기 2년간은 한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한국으로 100% 역수출하는 바이백 방식에 의존했다.

싼 인건비를 이용한 가격 경쟁력에 핵심 포인트를 두고 생산 제품 전량을 제일모직 구미공장에 납품해 국내 중급 시장을 겨냥한 것.

IMF 환율 폭등은 이같은 초기 경영 전략에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임가공보다는 외화 획득을 노린 제 3국 수출에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불과 1년만에 중국 경제환경은 급변했다.

현지 인력들의 임금 수준이 급상승해 가격 경쟁력이 악화됐고, 무엇보다 중국 고급 내수 시장이 무섭게 성장한 것이다.

이에 따른 삼성모방직의 선택은 고부가 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와 중국 내수 확대를 위한 마케팅 강화다.

지난 한 해에만 700만달러의 설비 투자를 통해 제직, 염색, 후가공 등 모든 생산 공정의 고부가가치화에 나선 것.

마케팅 강화는 본사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제일모직은 중국 통합 마케팅팀을 신설하는 한편 상하이에 이어 중국 의류산업 중심지인 닝보에도 무역 사무소를 개설했다.

김주홍 총경리는 "바이백, 제 3국 수출 등을 노리고 진출한 톈진은 중국 내수 중심지가 아니라 무역 사무소 개설이 불가피했다"며 "만약 공장 하나를 더 짓는다면 반드시 시장 중심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규 고합 부총경리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현지 시장부터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박창규 칭다오고합 부총경리(부사장)는 거대한 중국 섬유시장은 각 지역마다 독특한 내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고 했다.

비단장사 왕서방으로 잘 알려진 항주, 소주 일대는 실크 산업이 발달했고 인근 샤오싱은 폴리에스테르 연사 직물로 유명하다.

하이닌은 트리코트 제품이 많고 산둥성은 면화, 니트 중심지이며 복건성은 환편 집산지이다.

칭다오고합의 최대 수요 시장은 장쑤성 성택. 이 일대는 중국 최대 폴리에스테르 생지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박 부총경리는 "99년 진출 당시만 해도 바이어들이 칭다오고합을 직접 찾와와 물건을 떼 갔지만 공급 과잉 논란이 일고 있는 지금은 고합이 직접 시장을 찾아가야 해 운송비가 증가하고 있다"며 "향후 중국 진출을 노리는 섬유업체들은 반드시 제품 특성에 맞는 시장을 찾아 그곳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입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영준 만주무역 대표.

1998년 만주무역을 설립해 상하이, 샤오싱 일대에서 섬유무역을 하며 지난해 산업자원부로부터 수출 1천만불탑을 수상한 박영준 대표.

그는 쓰러질때 쓰러지더라도 중국 섬유산업 중심지에서 현지 내수시장을 노려야만 최소한의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92년 현대종합상사 상하이 무역사무소에서 출발해 지난 12년간 중국 섬유 무역에만 전념해온 그의 새해 포부는 현지 섬유시장 중심지에 한국 섬유공단을 건설하는 것. 중국 샤오싱시 최대 직물 업체인 천룡그룹과의 인연으로 이곳 빈해공업개발구에 9만평의 공단 부지까지 매입했다.

"내수 중심지에 진출한다 하더라도 단일 기업 형태로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다고 봅니다.

샤오싱시만 하더라도 벌써부터 화섬, 직물 등의 공급 과잉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직, 염색업체가 연합해 원스톱 시스템을 마련함으로써 두배의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박영준 대표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기 위해 스트림과 스트림이 연계한 중국 진출 형태가 바람직하다며 현지 내수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3년이상의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충고했다.

칭다오.톈진.샤오싱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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