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정치와 언론

입력 2004-01-13 09:28:29

언젠가 한국의 신문기자가 유럽의 권위있는 한 일간지의 정치부 편집장을 인터뷰 할 때 통역으로 도운 적이 있다.

한국의 신문기자는 그 편집장에게 언론의 정치적 개입과 관련하여 유럽의 상황을 물으려 했다.

'신문사가 특정한 정당과 정치인을 밀어줄 수 있나?', '신문사나 신문사 사주의 정치적 성향이 기사에 영향을 미치나?' 그는 우리의 상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들을 준비해 왔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대했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 편집장이 대답대신 이렇게 반문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가능한가? 우리는 신문사나 사주에 의해 기사가 좌우되지 않는다.

물론 사전검열을 받지 않고 기사를 쓴다.

간혹 기자들 끼리 의견을 듣기 위해 기사를 돌려 읽는 경우는 있지만, 그것은 검열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신문사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띠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책수행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서 오는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부당하게 신문사의 이익을 위한 동기에서 행해지는 지지는 윤리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독자들이 더 잘 알아서 판단한다.

그 신문은 판매부수가 현격히 줄어들 테니까".

너무나 당연한 그의 말을 듣고 한국의 언론과 정치현실을 생각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기자는 준비해 왔던 수많은 후속질문들을 적어놓은 수첩을 덮어야만 했다.

매우 원론적인 언론의 윤리적 태도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유럽 기자들의 생활에 대한 평이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감해야 했다.

그 신문사의 현관문을 나서면서 기자는 말했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라 혼났어요".

올해 우리는 총선을 치르게 된다.

총선은 원칙적으로 정책과 그 실행에 대한 민중의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정당과 정치인들의 정책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민중이 심판할 만한 근거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정한 시각에서의 보도와 비평을 통해 민중들을 이끌어 올바른 정치적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지배하는 정치체제가 권위주의적이고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을 때 언론은 정치이념이나 정치 능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고, 반대로 민주적이고 정통성이 있는 정치체제라면 민주언론의 성향을 띠며 민중이익의 대변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황에 처해있다.

혹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상황이 어렵다고해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에 던져진 과제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뭔가 새로운 다짐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소수의 정치권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 큰 기대를 걸 수 없을 때는 정의로운 언론과 지혜로운 민중이 되는 길을 모색하는 일이 최선일 것이다.

이미원 경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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