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펴놓고 보면 포항은 한반도의 최고 오지다.
동서를 잇는 도로는 영천을 거쳐 대구로 연결되는 편도 2차로의 31번 국도가 고작이고 남북으로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7번 국도가 유일한 소통로다.
외부와의 교류여건만 놓고보면 강원도나 서부 경남의 소규모 군 지역보다 나을게 별반 없다.
때문에 포항은 지금도 자급자족의 성격이 강한 20세기형 도시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환태평양시대'라거나 한반도의 'U자형' 개발 등 정치권과 자치단체 또는 학계의 구두선(口頭禪)이 30년 이상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즈음, 무수했던 정책공약 중에서 첫번째 결실인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개통은 양측간 68.4㎞거리를 40분 거리로 단축시킨다는 가시적 결과 외에도 '혼자 살던 포항'을 외부세계로 내놓는 선언적 의미를 지니는 역사성도 갖게 되는 셈이다.
▨불안한 바닥경제
하지만 정부는 물론이고 대구.포항.경산.영천 등 고속도로의 직접 영향권에 들어있는 지자체들이 소통원활이라는 한가지 측면만 보고 공치사를 하는 동안 포항지역 경제계에서는 희비가 교차하고 있고 개통이 임박해올수록 오히려 불안감이 증폭되는 분위기다.
포항 대백쇼핑 오주하 기획팀장은 "대구지역 백화점들이 고속도로 개통에 맞춰 포항지역 고객유치 특별행사를 준비할 것"이라며 "상당수 고객들이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로 빠져나가게 되고 이같은 현상은 지역 유통업계 전체를 불황에 빠져들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라고 했다.
포항상의 김석향 총괄실장도 "40분 정도라면 시내간 이동 정도에 불과해 드라이브나 산책삼아 갔다올 수 있는 거리"라며 "유통업계의 입장에서 고속도로 개통은 '대구시 포항구'의 성격이 강해지고, 소비자들은 시장이 활성화돼 있는 대구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시민 이상훈(39.포항시 지곡동)씨는 "대구와의 거리 단축은 중소 도시민이 느끼는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소외감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고, 주부 김선희(42.포항시 용흥동)는 "사소한 것이라도 대구로 가면 다양하고 싸게 살 수 있을 것이고, 고속도로와 경부고속철을 연계하면 서울가는 길도 훨씬 짧아져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다양한 소비처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이같은 일반 시민들의 반응과 관련, 포항지역 유통업계는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지역경제 사정이 더 악화된 안동.예천.영주.봉화.의성 등을 예로 들며 '개통'이라는 이벤트에만 흥분해 있는 지자체들이 곰곰히 이해득실을 따져보고, 상호 '윈윈'(win-win)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돈 벌 구석도 많다
올 여름 포항 송라면에서 18홀 규모의 골프장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다.
또 영덕에선 27홀 규모가 올 가을 개장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 진행이다.
이밖에 포항에서는 송라면과 동해면 대보면 등 해안선을 낀 곳곳에서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거나 착공을 앞두고 있다.
모두 고속도로 개통과 맞닿아 있다.
또 울진군 유치가 확정된 바다목장화 사업이나 경주의 감포관광단지 개발사업도 이 도로의 도움을 톡톡하게 받을 수 있다.
즉 동해안 관광산업은 새 고속도로가 대구라는 거대한 시장을 개척하는 효과를 유발함에 따라 올연말 이후 사상 최대 호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지역의 수산 관련업도 호기를 맞았다.
포항.영덕.울진 등 동해안권에 밀집한 지역 수산물 유통업계는 시장확대 기대감에 부풀었다.
지금까지도 지역에서 생산되는 횟감용 생선, 대게, 각종 건어물 등의 수요중 상당수는 대구시민들이었다.
그러나 산지까지 왕복에 5, 6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대구시민들은 비싼 값에 질 나쁜 회를 먹거나 '수입인지 국산인지' 구분조차 못한 채 수산물을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게의 본고향인 포항 구룡포나 영덕 강구, 울진 후포가 1, 2시간 이내로 좁아지고 한사람당 1만원 남짓이면 회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포항 죽도시장도 사실상 시내거리인 1시간대로 좁아지게 된다.
결국 대구지역 소비자들은 '저비용 고효율'의 소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동해안 유통업자들은 올 연말부터 최소 3배 가량의 시장 확대효과를 맞게 되는 셈이다.
박삼식(53) 죽도회상가 번영회장은 "대구 소비자 증가를 앞두고 다양한 유인책을 마련 중"이라며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올해가 죽도시장 횟집들이 재래식에서 현대식으로 탈바꿈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울릉도를 비롯한 동해안 5개 자치단체에서 생산되는 각종 건어물과 송이버섯 등 특산물 유통도 일대 전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고속도로 최대 수혜자-포항공단
올해 포스코 1천290만t을 비롯해 220개 포항공단 업체들의 총생산량은 3천100만t 가량으로 추산된다.
이중 해송(海送)되는 일부를 뺀 전체의 80% 이상이 7번과 31번 국도를 타고 전국에 공급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도로는 상습체증을 면치못하고 있고 7, 8월 피서철이나 해맞이 관광객이 몰리는 1월에는 철강공단 업체들이 제품수송에 차질을 빚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INI스틸 물류담당 오춘환(51) 이사는 "대구 이북권으로 가는 물류는 거의 전량 새 도로 이용이 가능해 수송시간이 크게 단축되고 업체 부담도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본격 조성공사가 시작되는 포항4공단도 이 도로에 의해 성공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이후 안동.예천 등 경북 북부지역 시군의 소비경제권이 고객 이탈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는 반면 공장유치에 탄력이 붙고 제조업체수가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포항공단도 신규입주 업체 증가와 일부 농공단지 및 신항만 배후공단의 조기조성 논의도 가속화되고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이강희(60) 상무는 "포항공단이 임금과 복지 등 각 분야에서 전국 최고수준인데도 중소도시 취급을 받으면서 우수인재 채용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라며 "대구와 40분 거리라면 이런 어려움도 상당 부분 극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포항시 용흥동과 흥해읍 등 고속도로 종점 주변 일부 주거지역은 대구시민들의 새로운 베드타운 역할이 예상되면서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지역 건설업계의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낳고 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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