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시대 열리다(2)-지역이 주체

입력 2004-01-07 11:25:52

김두관(金斗官) 전 행정자치부장관은 장관 시절 지방분권의 정도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줄 수 있는 정부 권한은 모두 지방정부에 넘기겠다"고 했다.

정부는 정책기획과 감사 등 최소한의 역할만 맡고 집행기능 등은 모두 지방으로 이양하겠다는 얘기다.

국회를 통과한 지방분권특별법에서 정부는 지방분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책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일임에도 굳이 특별법을 추진한 것은 지방분권을 '선언'하는 수준이 아니라 법으로 '강제'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방분권법에는 권한 이양으로 지방자치를 강화하고 교육자치와 경찰자치의 폭을 넓히는 조항이 담겨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선언적 규정이라 권한이양과 자치역량 강화의 폭이 어느 정도가 될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사안 사안을 추진할 때마다 필요한 추가 입법 등 공을 넘겨 받은 정부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행정수도건설은 이제 시작이다.

3개 특별법에 규정된대로 모두 추진되면 지방은 지금과 사뭇 달라질 것이라고 믿어도 무방하다.

수십년간 지속돼 온 중앙집권, 수도권집중의 국가운영 패러다임이 지방분권, 지방분산으로 바뀐다.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예상되지만 국민들은 아직 변화의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행정수도의 충청권 건설로 청와대, 국회, 대법원, 정부종합청사가 이전하면 국가의 주요 정책과 의사 결정이 충청권에서 이뤄지게 된다.

그때는 이미 고속철도 시대가 개막된 이후라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서울에 숙소를 마련할 필요가 없다.

전국 어디서나 2시간이면 국회에 도착할 수 있어서다.

서울에 살며 지방을 '궁벽한 곳', '사람살기가 불편한 곳'으로 오해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관리들이 지방을 가까이서 호흡하게되면 모든 정책이 지방중심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환경이 사고를 지배하기 마련인 만큼 지방에 사는 고위 관리는 지방적 사고를 하게된다.

근본적인 변화다.

수도권에 있는 100여개 공공기관의 수도권, 충청권 이외 지역 이전만 이뤄져도 산술적으로 계산해 당장 대구, 경북에 10개 이상 공공기관이 들어선다.

파급효과도 얼른 점치기 어렵다.

공공기관 하나가 이전하면 관련 기관이 덩달아 옮기게 되고 금융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수도권정비법으로 공장 신증설을 규제해도 죽자사자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려 했던 기업들도 장기적으로 하나 둘 지방으로 옮기거나 새로 공장을 만드는 붐이 조성될 수도 있다.

이처럼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변화가 예고된 마당에 지역이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법안의 규정이 정책으로 가시화되면 수도권의 저항이 거세질 터이다.

이전 대상기관 직원들은 삶터가 바뀌게 되므로 조직적인 반대 작업을 벌일 수도 있다.

지방이전 시늉만 하거나 가능한한 그 시기를 늦추려는 지연전술을 펼칠 가능성도 높다.

지방분권, 국가균형발전, 행정수도건설에 지역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인 이준동씨는 "지방화 정책 입안과 실행을 정부 관리에게만 맡겨둬서는 곤란하다"며 "지역에 삶의 터를 둔 지방민이 적극 참여해야 지방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3대 특별법 국회통과에 큰 역할을 한 지방분권국민운동(의장 김형기 경북대교수)도 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지역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절박한 요구가 3대 특별법 실행 과정에 담겨야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각 지역에 지방분권연구소를 설립해 '연대 연구활동'을 전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간 연대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지방분권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을 포함한 지역 정치권의 역할도 크게 요구될 전망이다.

관련법 정비 등에 수도권이 조직적으로 저항하면 지역도 정치권이 중심이 돼 조직적으로 싸워야 할지 몰라서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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