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며 과학 배우는 이영미씨 가족

입력 2004-01-06 15:13:34

"옥수수, 버터, 소금 약간…".

"어머니, 뭘 하시는 거예요?"

"팝콘 만들려고".

"우와∼, 신난다.

그런데 전자레인지 대신 프라이팬에 하는 거예요?"

"그래. 뚜껑있는 팬이면 가능하거든. 팝콘 만들기는 쉽고 간단하지만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왜 과학을 어렵게만 생각할까. 경상여중 과학교사인 이영미(40)씨는 과학이 곧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에서도 딸 정빈(8)이와 함께 과학 실험을 즐겨 한다.

실험 장소는 주방.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면서 덤으로 과학 원리까지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유, 당근, 옥수수, 밀가루, 얼음, 그릇, 숟가락, 주전자, 고무줄….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실험 재료로 쓰인다.

이씨는 아이와 함께 팝콘을 만들어 보면서 물체의 상태 변화와 에너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면서 열을 가해 고체가 액체로 변하는 상태 변화에 대해 설명한 이씨는 팝콘용 옥수수를 팬에 가열하면서 팝콘의 원리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얘기했다.

"옥수수 알갱이 속에 들어있던 수분이 열을 받아 기체인 수증기로 바뀌면서 부피가 엄청나게 커지는 거야. 그러면서 압력도 높아지고. 그러다 결국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해 옥수수의 껍질이 뻥하고 터지면서 팝콘이 만들어지는 거지. 뻥 뻥 뻥 하고 말이야".

"팝콘의 비밀은 바로 물의 상태 변화였군요".

"그럼, 군밤 장수 아저씨가 밤을 구울 때 껍질을 칼로 조금씩 깎아내는 이유도 알겠니?"

"알았어요. 밤도 껍질이 단단하니까 그냥 구우면 밤 속의 수분이 수증기로 변해서 부피와 압력이 커지게 되니까 결국 뻥하고 터지게 될 거잖아요. 팝콘이라면 몰라도 밤이 그렇게 터지면 큰일나잖아요".

정빈이는 군밤의 비밀까지 알아낸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흡족했던 모양이다.

"엄마와 요리하면서 과학 실험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정빈이는 고소하게 튀겨진 팝콘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아이와 과학 실험을 즐겨하던 이씨는 올 봄에 자녀교육서까지 펴낼 작정이다. 아직 제목은 정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아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서 과학 원리를 공부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쉬운 내용으로 꾸밀 생각이다.

우유를 가열해 풀을 만들고 당근·시금치즙, 물로 각각 밀가루 반죽을 해 삼색 수제비를 만들면서 태양과 달, 지구의 관계를 공부할 수도 있다. 다 쓴 케첩통을 줄에 매달아 돌려보면서 중력에 의한 원운동을 실험해 볼 수도 있다.

카레라이스, 볶음밥, 유부초밥, 군고구마, 라면, 계란찜….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가지고서 과학원리를 쉽게 가르칠 수 있다니 흥미롭기 그지없다.

"사소하게 넘어갈 수 있는 현상들도 아이와 함께 관찰하고 실험해 보면서 과학이 쉽고 즐거울 수 있다는 인식만 심어줄 수 있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이씨는 책 만드는 일을 두 딸과 함께 하고 있다. 장래에 만화나 디자인쪽 일을 하고 싶어하는 큰 딸 예슬(15)이는 엄마가 쓴 글에 맞는 그림들을 척척 잘 그려낸다. 동생 정빈이도 언니에게 질세라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고 그림도 그려 책에 같이 넣을 생각이다.

이씨가 이번에 펴내는 책은 벌써 5번째다.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를 변화시킨다', '작은 친절', '아줌마의 설렁설렁 잉글리쉬'…. 다음 카페에 '모성애 결핍증 환자의 아이 키우기' 칼럼(http://column.daum.net/juice)을 쓰며 TV 방송 출연도 하고 있는 그녀는 여느 부모처럼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두 발 벗고 나서지만, 방식을 조금 달리할 것을 권한다.

남들이 좋다는 방법을 무조건 따르고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기 보다는 좀더 아이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아이를 학원에 안 보내고 집에서 같이 놀면서 영어, 과학은 물론 자립심까지 가르치는 엄마 이씨는 "아이가 정말 달라지길 원한다면 딱 한 걸음만 떨어져 기다려줄줄 아는 부모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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