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태의 백두대간 종주기 (25)-형제봉 (4)

입력 2004-01-06 15:27:08

4.

대간 능선길에 들어서자 마자 산밑 인가의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이 따식들이,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주인 어르신들 곤한 잠 다 깨우겠다. '부화뇌동'. 한 마리가 짖으니 온 동네 개들이 다 따라서 짖는다. 아휴, 바보 개들. 집에 들어오는 도둑을 보고 짖어야지 한창 멀리 떨어져 대간산행을 하시는 고귀한 분들을 향해 짖다니. 에이 '개 같은 개'야. 뭐야.

'개 같은 개'는 좋은 말인가. '사람 같은 사람' 처럼. 뭐야. 제나라 경공이 정치의 요체를 묻자 공자님께서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운 세상"이라고 했는데. 다시 이 '개 같은 개'야. 이헌태, 말 장난 그만해라. '개 같은 개'도 허무하다. '재수 개같이 없으면' 보신탕 집에 끌려가기는 마찬가지.

요즘에는 사람대접, 아니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 소위 '사람 같은 개'도 흔하다고 하네요. 짐승- 인간- 신의 위계질서로 보면, '신같은 사람' 꼴이지.사람 같은 개도 결국 개지 뭐. 신같은 사람도 결국 사람이고. 그렇구나. 논리가 완벽하네. 이헌태는 짐승같은 사람인가, 사람같은 사람인가, 신같은 사람인가 맞춰 보세요. 뭐야. 이헌태는 헛소리 잘하는 사람이지 뭐. 그래도 사람이니 다행이다. 넘어가자.

혹시 나그네가 반가워서 짖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다행이고. 산행 초입부터 개소리를 듣고 시작하니 그래도 기분이 좋다. 뭐야.

여름 같았으면 정글을 헤치고 갔을 것 같다. 온 산에 키 큰 나무들이 호휘한 가운데 길섶에는 키 낮은 관목이 너무나 빽빽하게 쭉 도열하고 있다. 이번 산행은 지난 두 번의 상주 야산 산행과 차원이 다르네. 뽀죡하게 날이 선 봉우리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는 모양.

이미 두 개의 봉우리를 힘들게 오르내렸고 세번째 봉우리를 향하여 부지런하게 내달렸다. 야간산행은 '적막속, 어둠속 행군'이라서 구경할 산천도, 말 건넬 사람도 없어서 시간도 훌쩍 빨리 가고, 거리도 훌쩍 멀리 가는 장점이 있다. 어느 새 꽤 멀리 온 것 같다. 해발이 높아 갈수록 피부를 콕콕 찌르는 찬 겨울바람이 불고 있다. 한시간 가량 지난 5시 20분쯤, 봉우리에 '산불감시초소'망루가 우뚝 서 있었다. 어둑 컴컴해서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늘의 별빛과 마을의 전기불빛 밖에 없지만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속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어둠의 사위 속에서 왼쪽 저 멀리 상현리 마을 인가의 전기불빛이 마치 촛불 빛같다. 눈을 돌리자 가장 먼저 눈에 쏙 들어왔는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갈구하는 촛불평화시위가 이 民族의 등줄기 백두대간 산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가 언제 광화문에서 이곳까지 왔는 지 알 수 없으나 내년에는 전쟁이 없기를 기원한다. 단 한명의 생명도 전쟁으로 죽는 이가 없기를. 너무 현실불가능한 기도구만.

전쟁종식. 전쟁종식. 전쟁종식. 전쟁을 유도하는 이나 이를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이나 모두 다 사라지기를. 둘 다 똑 같더라구요. 부부싸움도 둘 다 똑같으니 싸운다면서도. 이헌태, 니도 많이 싸워놓고 시치미는. 넘어갑시다.

발아래 저 마을의 인가의 전기 불빛을 보니 땅에 내려온 하늘의 별들의 빛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걷혔는지 화령재에서 처럼 피자 조각 난 것 없이 넓고 넓은 하늘 공간 전체가 '별 밭'이었다.

'별 밭'보다 '별 과수원'이 좀 나은가. 채소보다 과일이 났겠지. 올해는 잦은 비 때문에 벼는 물론 밭작물도 흉작이어서 가격이 두 배로 껑충 뛰었다고 하네요. 찹살, 콩, 조, 수수. 밭작물도 폼 잡을 때가 있구만. 서러움을 딛고 맘껏 도약해라. 뭐야. 밭작물은 안 먹으면 그만이지 뭐. 잉. 라면먹고 피자먹으면 되지.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이 총총.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귀절 아시죠. "—산허리는 온통 메밀 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들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를 활용하면 별들이 하늘에 다이아몬드 뿌린 듯이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 노래 아시죠.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의 나의 별---". 이헌태, 놀고 있네. 지금은 '위풍당당'시대. 그래 놀고 있다 와. 니가 내 혼자 노는데 보태준 거 있나. 이헌태 잘 노는데 자께?'소금 뿌릴래'. 잉. 그렇게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을 이런데 사용하다니. 상처난 곳에 소금뿌려. 좋은 표현이 아니네.결론 이효석만 좋게 썼구만.

소금이 나왔으면 보너스. 신이 인간에게 황금 3개를 주었다고 하네요. 하나는 황금, 또 하나는 소금, 마지막 하나는 지금. 성직자들의 공통된 말씀, "지금이 천국이면 천국이고 지금이 지옥이면 지옥이다". 영어의 프레전트(present)가 '선물'이면서도 '현재'라는 뜻이 있잖아요. 현재, 즉 지금이 그래서 신의 선물이구나. 그 깊고도 깊은 뜻을 왜 몰랐지. 이헌태에 따르면 황금 3개에서 하나 더, 추가하면 손금. 즉 팔자, 운명이죠. 이것은 필요 없다고요. 운명은 개척하면 된다고요. 네.

또하나 더 보태자면 노래와 예술도 있어야죠. '가야금'. 굳이 또 하나 더 보태자면 인기방송드라마 '대장금'. 이것도 신이 내린 선물인가. 2003년 문화방송 연기대상을 탄 탤런트 이영애씨도 신의 선물인가, 감독이 신의 선물인가, 드라마 작가가 신의 선물인가. 나도 모르겠다. 이영애씨는 신의 딸이기 때문에 시집가면 안되겠네. 아이쿠, 불쌍해라. 만인의 연인 노릇하다가 본인은 외롭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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