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갑신년에 보내는 연하장

입력 2004-01-03 11:33:35

올해가 원숭이 해다.

원숭이는 꽤가 많고, 날렵하다.

그러나 그 꽤 많고 날렵한 원숭이도 아차 하는 순간 나무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하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거의가 조심성의 부족 때문이네. 일을 대충대충 해치워버리는 성미, 즉 조심성 부족 때문이네. 꼼꼼하게 앞뒤를 살펴가며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그 조급성이 탈이네. 이런 성미에서 파생하는 것이 안전에 대한 불감증일세. 설마 어떨라구 하는 성미가 탈이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왜 있잖아? 그런 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잊음'이 헐하네. 올해는 이 점 단단히 명심해야 하겠네.

우리 강산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으로 금수강산이라네. 밖에 나가보면 더욱 그것을 절실히 느낀다네. 내 고향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로 트인 그 앞바다만 하더라도 세계 이름난 바다들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다네. 유명한 그리스 에게해를 가보고 비너스를 탄생시켰다는 그 바다의 물빛이 어찌 그렇게도 어두웠던지. 통영 앞바다의 그 쪽빛 물빛이 한없이 돋보였다네. 이 아름다운 강산. 사계절의 변화가 또렷하고, 하늘 맑고, 물 맑고, 땅에서 나는 농산물, 삼면의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 모두가 그 맛에 있어 더없이 흡족하지 않은가 말이네. 이런 축복 받은 땅과 바다를 사람이 더럽혀서야 되겠는가 말이네. 우선 우리는 원숭이처럼 까불거리지 말고 좀 더 차분해지고 좀 더 깊이, 좀 더 넓게 생각을 가다듬도록 해야 하겠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지 않나 말이네. 이라크 파병문제 말이네. 작년에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것은 잘한 일이네. 왜 미국과 이라크 문제에 우리가 개입하여 우리 젊은이들의 신병까지 위협받도록 만드느냐는 힐난은 만 번 옳은 말이네. 그러나 여기에는 다분히 정서적인 내용까지가 섞여 있다고 보여지네.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반감 같은 것 말이네. 여기에 대한 반감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국과의 반세기가 넘는 그동안의 유대관계라든가 앞으로의 중동진출에 있어서의 우리의 입지 등 국가 이익을 염두에 둘 때 미국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더욱 논리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나 말이네. 이처럼 우리도 차츰 논리의 단순 소박성을 벗어난 좀 더 높은 차원의 논리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하겠네. 아직도 우리는 단순논리에 얽매여 있는 감이 없지도 않네. 올해부터는 서서히 이런 면도 청산해 가야 하겠네.

작년에 '코드'란 말이 유행했는데, 코드는 그것을 고집할수록 사람을 단순논리에 사로잡히게 하네. 뻔하지 않는가? 자기 코드를 생각한 나머지 남의 코드는 없는 척, 모르는 척 해버리게 되네. 그렇게 하자니 시야가 좁아지고 독선적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지네. 한해 동안의 경험을 거울삼아 이 점 올해에는 많은 배려가 있어야 하겠네. 우리는 머리가 좋은 국민이네. 어디선가 아이큐를 겨뤄본 결과 우리가 세계에서 2등을 차지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좋은 머리를 더욱 유용하게, 더욱 멀리 바라보고 쓸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네.

내친 걸음에 우리 대통령께도 한 말씀드리고 싶네. 지나치게 몸을 낮추지 말았으면 좋겠네. 너무 고자세로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며 국민을 굽어보는 것은 더욱 안 좋은 일이기는 하나 너무 몸을 낮추면 할 말 안 할 말, 말이 잦아지게 되네. 즉,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게 되네. 대통령께서는 언제나 의젓한 모습이 가눠 있어줘야 하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작년 한해의 경험을 거울삼아 올해부터는 좀 더 의젓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게 되었으면 하네. 흔들리지 않고 믿음을 주는 대통령의 든든한 모습 말이네.

자네에게도 올해는 반갑고 좋은 일이 많이많이 있어 주었으면 하네. 무엇보다도 건강하시기를 비네. 갑신년 새해.

김춘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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