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넘자(1)-적진으로 뛰어든 기업들

입력 2004-01-02 10:35:02

매일신문사는 중국에 진출한 지역 및 국내외 대기업들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의 중심을 들여다 봄으로써 대중투자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취재팀은 칭다오, 텐진, 베이징, 샤오싱, 상해 등 중국 5개 도시를 돌며 삼아, 동해전장, 칭다오고합(이상 칭다오), 삼성SDI, 제일모직, 평화산업(이상 텐진), 삼립산업(베이징), KE, 남방그룹, 상성화섬(이상 샤오싱), 서도산업, 포스코(이상 상하이) 등 중국진출 국내 11개 기업과 중국 3개 업체를 발로 뛰었다.

#1. 13일 둘러본 중국 상하이시 푸시(浦西.포서) 최대 번화가 난징둥루(南京東路.남경동로)는 대구 동성로를 끝없이 연결시켜 놓은 듯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인파에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을 정도. 상상을 초월한 인의 장막에 압도된 취재팀에겐 거리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수천개의 소매상점과 식당들은 차라리 소품처럼 느껴졌다.

상하이에선 유일하게 차가 다니지 않는 2km 구간을 포함해 끝없이 이어지는 이 일대 쇼핑거리는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방돼 200여년의 상권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난징루만큼은 못하지만 이에 못지 않는 거대 상권은 푸시 지역에만 2곳이 더 있었다.

최근 2, 3년새 급부상한 화이하이루(匯海路.회해루)와 쉬쟈후이루(徐家淮路.서가회로)는 백화점 중심의 신흥 상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직 한국백화점만 터를 잡지 못했을뿐 동방, 제일 등의 토종 백화점들은 물론 이세탄, 이또낀, 태평양, 홍콩신세계, 바이셩(Parkson) 등 일본, 대만, 홍콩, 태국, 말레이시아계 5대 대형 백화점과 크고 작은 수백개의 외국계 2급 백화점들이 거리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다.

유럽 명품들도 상하이 상륙작전에 돌입했다.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그룹(LVMH)은 내년 초 난징루에 첫번째 매장을 열 계획이고 까르티에도 향후 2~3년간 상하이 주요 상권에 15개의 새로운 매장을 낼 예정이다.

취재진을 안내한 김재걸(33) 서도산업 상하이지사 대표는 "상하이시 상권은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고 있다"며 "상하이를 빼고는 중국 내수시장을 논할 수 없다.

상하이 내수를 목표로 하는 지역기업들은 더 늦기전에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상하이지사 설립 등 현지에서의 실질적인 시장분석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 12일 저쟝성 샤오싱시 남방그룹내 제직공장. 끝없이 늘어선 거대한 기계군단은 'China phobia(중국 공포증)'를 실감케 했다.

이곳의 섬유직기대수는 정경기, 연사기, 와인더기, 에어제트, 워터제트, 염색기, 나염기 등 무려 2천대 수준. 게다가 대부분의 직기들은 메이드 인 이탈리아 상표가 부착된 최신 설비였다.

더욱 놀라운 점은 1988년 설립해 인근 두 공장에 1천650대의 제직기를 더 보유한 남방그룹은 샤오싱시에서도 겨우 10위권 업체에 불과하다는 사실. 큰 업체 경우 3천~4천대에 이르는 제직기에 하루 200만 야드의 염색.후가공이 가능한 염색설비까지 갖춰 200개 업체가 밀집한 대구 염색공단의 1일 생산량을 능가하고 있다.

유독 이 일대에 중국 섬유 대기업이 많은 이유는 이곳에서 30분 거리인 커차우(佳橋.가교)내 칭방성(經方省.경방성) 원단시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총 10km에 이르는 거대 시장엔 10평 규모의 소규모 가게들만 수만개가 입점해 있고, 시장 중심인 커차우 네거리엔 올초 21층짜리 무역센터 정공대하(情工大厦)가 건립됐다.

최소 1천여개의 상점들이 입주할 수 있는 수십개 대형 건물들도 시장 곳곳에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 섬유 대기업들은 시장을 찾아 자연스레 이 일대에 밀집한 것이다.

샤오싱 권력서열 제3위로 인근 빈해공업개발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첸지안(43) 주임(당서기)은 "칭방성 시장규모는 내수만 246억달러(3조원)에 이른다"며 "내년에는 4조원을 돌파할 것이며 이같은 성장세는 최소 10년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쉬순씽(47) 남방그룹 회장은 "대부분의 한국 섬유업체들이 중국 내수 중심지인 샤오싱 일대를 외면한채 칭다오 등 산둥성에 밀집해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규모면에서는 중국과 상대가 될 수 없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의 뛰어난 기술력은 아직도 경쟁력이 충분하다.

진짜 중국에서 성공하고 싶은 기업은 시장 중심으로 들어와 중국 기업들과 싸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륙은 잠시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중국시장은 거대한 '공룡' 같았다.

각종 수치와 통계로 중국시장을 정형화하는 작업은 무의미했다.

중국시장을 분석하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보고, 느끼고, 몸으로 부딪치는 것 뿐이다.

중국시장은 바로 지금도 상식을 뛰어넘는 급팽창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시장의 중심, 적진 한 복판으로 과감히 뛰어들자. 중국시장의 중심에서 중국을 제대로 봤다면 누구나 지역 대중투자의 근본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지역 기업들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내수시장을 외면하고 있다.

지금도 대부분의 지역 기업들은 거대한 중국 내수 공략 대신 한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다시 한국으로 역수출하는 바이백(Buy-Back) 방식의 중국 진출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인건비에 의존한 바이백은 이제 곧 경쟁력을 완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국내업체들이 너도 나도 바이백 시스템을 도입해 더 이상의 원가 절감이 불가능하게 됐고, 무엇보다 가격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중국 제품들이 국내 시장을 장악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의 중국 진출 기업(676개)은 지난해 말 현재 장쑤성을 중심으로 그 이북 지역에만 무려 601개가 집중해 있다.

반면 중국 경제발전의 핵심지역이라 할 수 있는 남부 상하이, 저쟝성, 광둥성 지역에는 각각 26개, 9개, 14개 기업만이 진출해 있을 뿐이다.

93년 대구-칭다오시간 자매결연 이후 칭다오로 앞다퉈 진출한 지역 기업(209개사)들을 보자. 이곳엔 섬유업체들을 중심으로 가장 많은 지역 기업들이 진출했다.

그러나 3일부터 7일까지 5일간 칭다오를 둘러본 결과 단지 자매결연 도시라는 이유로 진출해 싼 인건비를 노려 한국으로의 역수출에 중점을 둔 지역 기업들은 대부분 한계 상황에 이르고 있었다.

칭다오시 교남기술개발구에서 만난 (주)삼아 김형진(34) 총경리는 "바이백 방식은 3년전부터 한계에 달해 대부분의 섬유 진출 업체들이 중국 내수로 전환했지만 모든 전략을 바이백에 집중했던 터라 악전고투가 불가피했다"며 "하루 아침에 문을 닫고 사라지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상하이.샤오싱.베이징.텐진.칭다오.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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