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은 UN(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쌀의 해'다.
그러나 우리는 2004년을 또 다른 의미에서 쌀을 볼 수밖에 없는 한해다.
한국은 관세화가 원칙인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을 맺으면서 2004년 말까지 쌀에 대해 예외적으로 관세화를 유예받는 대신 2005년 이후 쌀시장 개방문제는 2004년 중 재협상을 벌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쌀은 200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농가의 77%인 98만5천 농가가 생산하고 있는 대표작물이다.
농가소득에서 25%를 차지하고 농업소득에서도 50% 정도의 비중을 점유하고 있다.
쌀 재협상의 결과에 따라 농촌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쌀 문제 해결을 위해 생산자, 소비자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생산자들은 어떻게 대비해나가고 소비자들은 어떤 쌀을 원하는지 쌀 생산과 소비부문 각계의 목소리와 역할을 알아본다.
"제일 싼 땅인 평당 3만원 기준으로 1만평의 농지를 매입하면 3억원의 자금이 소요됩니다.
보통 농업기반공사 쌀전업농 육성대상자에 주는 연리3%, 20년 균등분할상환(10% 자부담) 조건의 농지매매 자금을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합니다.
요즘 쌀1가마 값 16만원 기준으로 풍년일 경우 평당 3천원씩 3천만원의 조수익이 생깁니다.
매년 갚아야할 원금 1천500만원과 3%이자 900만원을 합하면 2천400만원이고 여기에 평당 500원씩 500만원의 생산비를 더하면 2천900만원에 달합니다.
인건비를 계산에 넣지않더라도 1년 1만평 쌀농사에 수익이 100만원 남짓이라는 얘기입니다.
쌀시장이 개방되어 쌀값이 10만원대로 하락할 경우 조수익은 2천만원에 불과해 매년 900만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경북 의성군 '단북태양쌀 오리작목반'의 도성기 작목반장은 영농규모화니, 쌀전업농 육성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쌀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입니다.
쌀 시장이 개방되면서 값이 하락하면 손해는 더 늘어날 뿐입니다".
도씨는 쌀 수입개방에 대비하는 길은 영농규모화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나마 우리 쌀을 지키는 것은 친환경농사뿐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오리작목반의 평당 수익은 5천원선. 그나마 친환경 쌀농사를 짓기 때문에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어 좀더 수익을 낼 뿐이다.
현재 13농가가 무농약 4ha, 전환기 유기재배 8ha에서 생산하는 친환경 쌀 64t은 10㎏ 1포대당 4만~4만2천원선에 모두 서울로 팔려나간다.
쌀 시장이 급격히 바뀌고 있다.
안전성을 중시하는 소비패턴으로 변하고 있다.
우리쌀지키기시민연대 정현수(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국장)씨는 소비자구매에서 우리 쌀을 살리는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소비자들은 특히 먹는 것에 무심한 편입니다.
무심하다못해 피자 등 아무거나 먹는 경향이 있습니다.
생활협동조합이나 학교급식, 유아 어린이집 등으로 우리농산물 사용을 늘려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친환경 쌀 생산은 요즘 농업연구기관에서도 '화두'다.
우리 쌀의 살길이 여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밀양 영남농업시험장 양세준 벼육종재배과장은 "현재 벼 품종개량의 방향은 국민들이 원하는 안전성 친환경 품종개발"이라며 "현재 친환경 벼에 관한 연구도 기존의 쓰러짐에 강한 벼와 병충해에 강한 주남, 일미 등의 품종을 개발 보급한 것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소비패턴이 바뀌면서 친환경 재배 쌀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도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이 판매.유통하는 친환경 쌀의 추이를 살펴보면 1997년 3천60가마에서 매년 증가하여 2002년에는 1만5천67가마를 판매했고 2003년엔 2만1천535가마를 계획했다.
쌀 시장에서는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불신 극복이 최대 과제다.
주부 이영조(39.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확신만 선다면 값이 아무리 비싸도 그 쌀을 사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성명환.허주녕씨가 서울과 대구시내 가정주부 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구매한 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로 품질에 대한 불신(38.3%)이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안전성 문제(23.5%), 높은 가격(11.7%), 생산지표시 불신 등의 순이었다.
손재근(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농경제학과)교수는 "일본이 쌀 시장을 개방하고도 국내 쌀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은 친환경 쌀 생산이었다"며 "철저한 주문생산으로 품질을 관리해나간 게 비결"이라고 했다.
쌀은 앞으로 4, 5년안에 확실하게 차별화된다고 예상한 손 교수는 "이젠 장기적 안목에서 브랜드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가질 때"라고 강조했다.
정종기 경상북도 농업기술원 기술보급국장은 "친환경농업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부족과 유통망 구축 미비 등으로 가격이 차별화되지 않아 재배확대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했다.
도성기 작목반장도 "친환경 쌀 생산여건은 충분히 갖췄다"며 "유기농법 생산은 그동안 수없이 받아온 교육으로 문제가 없는데 유통과 판매가 문제"라고 걱정했다.
최근 몇 년새 부쩍 늘어난 쌀의 브랜드화도 우리 쌀을 살리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쌀 시장이 개방되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수입 쌀과 품질 면에서 겨루어도 자신있기 때문입니다".
'의성 황토쌀'을 생산하는 (주)한가위미곡종합처리장(의성군 봉양면 도원리) 박소영 대표는 지난해 800t 저장규모의 벼 저온저장고를 전국에서 제일 먼저 세웠다.
밥맛 유지를 위해 자동 온도.습도 조절로 벼를 최적의 상태로 보관해뒀다 도정하자마자 바로 출하하고 있다.
박 대표는 "도정한 쌀을 바로 출하시켜 밥맛을 유지하는 것이 의성황토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자랑했다.
현재 경북도내에서 등록된 쌀 브랜드만해도 160여종. 주부 이씨는 "인지도가 높은 몇몇 쌀을 제외하고는 브랜드가 너무 많아 오히려 혼란스럽다"며 "브랜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동아백화점 양곡담당 이창호과장은 "요즘은 소비자들이 쌀을 선택할 때 값에는 큰 비중을 두지않는 것 같다"며 "브랜드화한 고품질 쌀값이 일반미보다 보통 20%정도 더 비싸지만 갈수록 판매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북도는 지역여건에 맞는 친환경농업 육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경북도 농산과 최 웅 과장은 "미곡종합처리장(RPC)을 중심으로 생산에서 판매까지 일괄처리체계를 구축해 고품질 브랜드쌀 생산에 나서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쌀 소비량이 줄어든다는 데 있다.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해 쌀을 지키자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쌀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쌀 생산농가는 소비자의 기호에 부합하는 안전하고 품질좋은 쌀 생산에 노력해야 한다.
미곡종합처리장 등 개별생산주체는 고품질.차별화된 쌀을 생산하기 위해 철저한 품질관리에 나서야 한다.
생산자든 소비자든 한결같은 주문은 상호신뢰 구축이다.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신이 뭔지를 유통주체들은 살펴야한다.
중앙정부도 할 일은 많다.
품질인증, 원산지표시 등 친환경.차별화 관련 제도의 정착을 위해 감독과 관리의 강화가 필요하다.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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