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퇴진" 사실상 최대표 불신임

입력 2004-01-01 11:32:31

한나라당의 당무감사 유출 파문이 지도부 인책론으로 번지고 있다.

최병렬(崔秉烈) 대표가 "당무감사 결과를 공천에 참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진상조사위를 가동, 진상규명 및 책임자 징계작업에 착수하는 등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서청원 전 대표 등 중진을 중심으로 한 새 비대위 구성론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상 최 대표 체제에 대한 불신임이다.

30일 오전과 오후 연이어 열린 한나라당 의총에서 C, D급으로 분류된 의원들은 이번 당무감사 결과를 '살생부', '정치적 학살행위'라고 규정하고 △지도부 퇴진 △비상대책위 해체 △지금까지 추진된 공천작업 백지화 △사태수습을 위한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 개최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와 신경식(辛卿植), 하순봉(河舜鳳) 의원 등 비주류측 10여명은 이날 낮 공동대응을 위한 별도 모임을 갖고 최 대표, 이재오(李在五) 사무총장, 김문수(金文洙) 공천심사위원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서명작업에 착수, 현역의원 68명, 원외지구당위원장 4명 등 모두 72명(대구.경북 13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이들은 최 대표가 2일까지 납득할 만한 문책인사와 투명한 공천을 보장하는 조치를 하지 않을 경우 서명자 명단 공개 등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서명에 참여한 의원은 서 전 대표 이외에 박희태, 박근혜, 강재섭, 권철현 등 계파를 초월해 많은 중진들이 포함돼 있고 C, D 등급을 받은 의원뿐만 아니라 A, B등급을 받은 의원들도 상당수 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 전 대표도 31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무감사 유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찬회를 열 것을 제의한 뒤 "당이 정상을 되찾기 위해서 최 대표와 당 지도부가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지도부 사퇴를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서 전 대표는 이어 "의원들의 요구를 지도부가 묵살한다면 전 대표로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지도부 퇴진운동에 나설 뜻을 시사하기도 했다.

서 전 대표측의 이같은 움직임이 어느 정도 세를 얻을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서 전 대표가 한나라당내 최대 비주류 계파인 데다 당무감사 유출이 인위적 물갈이를 위한 지도부의 음모라는데 대부분의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어 상당한 지지를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지도부는 "크게 잘못됐다"(최 대표)며 당무감사 유출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도 사퇴나 물갈이 공천의 원칙에 대해서는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료 유출의 핵심인물로 지목되고 있는 이재오 사무총장은 사퇴요구에 대해 "내 거취는 내가 결정할 것이며 내 결정이 마음에 안들면 불신임안을 제출하라"고 맞서고 있다.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도 "유출된 당무감사 자료를 공천심사에 적용하지 않겠다"면서도 "국민이 우리당에 요구하는 것은 가급적 많이 바꾸라는 것"이라고 말해 대대적 물갈이 원칙은 바뀌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했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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