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년 새해가 밝는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경계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가는 해를 정리하고 오는 해를 따로 맞이할 필요 없이 한곳에서 한 해 정리와 신년각오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일몰 속에 한 해의 묵은 먼지를 털어 내고 일출처럼 불쑥 머리를 치켜드는 희망을 확인하기에 안성맞춤인 곳, 충남 서천 비인만 끝자락 마량포구이다.
동해안처럼 남성적인 맛도 없고, 남해안처럼 오밀조밀한 느낌도 없지만 고요함속에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서해의 바다는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 여행에 그만이다. 겨울 찬바람에 파도타기를하는 신성리 갈대밭과 1천300년 역사의 한산 소곡주 맛기행은 덤이다.
◇일몰이 기막힌 동백정
마량포구 뒤편 언덕에 있는 동백나무숲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걸작이다. 바닷가 양지녘의 몇몇 동백나무는 벌써 탐스런 꽃을 피웠다. 동백나무 숲 앞에 어우러진 해송이 찬바람을 막아 동백이 따뜻한 햇살만 받았나 보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피자마자 굵은 눈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진 꽃송이가 서러움에 떨며 잔디밭에 뒹구는 모습도 제법 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동백정 누각에 올라 옛날 어느 장수가 바다를 건너다 신발 한짝이 빠져 섬이 되었다는 오력도를 마주 한다. 계미년 끝자락을 향해 달려온 해가 검은 실루엣으로 빛나는 오력도 사이로 가라앉는다. 붉게 물든 서편 하늘 노을은 해가 떨어진 후에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고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동백꽃의 순정을 닮아서일까?
동백림옆 방파제에는 바다낚시꾼들이 고기를 낚고 있다. 한해가 저무는 이 시간에 그들은 시간을 낚시질하고 있다. 해가 지고 난 마량포구에 출어했던 어선이 돌아오자 항구가 시끌벅적 해진다. 올해는 특이하게 봄의 전령사 쭈꾸미가 아직도 잡힌다. 광어를 저울위에 올려 무게를 단 뒤 잡은 양을 계산하느라 분주하고, 갑판위 한편에서는 즉석에서 잡은 고기를 회를 쳐 먹기도 하는데 그저 침이 꼴깍 넘어 간다.
◇해지는 서해에서 보는 경이로운 일출
해돋이 하면 동해를 떠올리지만 서해안 마량포에서는 동해 못지 않은 일출을 볼 수 있다. 동해에서 불쑥 솟아 바다를 물들이는 일출과 달리 마량포의 일출은 소박하면서도 서정적이다. 동남쪽 띄섬, 쌍도, 할미섬위로 떠오른 해는 어둠에 잠겼던 시커먼 갯벌부터 깨운다.
한순간 터지는 빛무리는 물빠진 갯벌에 주저않은 자그마한 고깃배들의 갑판을 스치며 어둠을 몰아낸다. 이때부터 어민들이 바빠진다. 갯벌에서 조개를 잡거나 설치해 둔 그물에 잡힌 고기를 건져내느라 소리없이 분주하다. 갯벌의 아침해는 하나가 아니다. 물이 남은 웅덩이마다 한덩이씩 시뻘건 해를 담고 있다. 밤하늘을 수놓았던 그 많던 별들이 물이 빠진 갯벌에 모조리 해가 되어 다시 내려앉았다. 갯벌에 설치한 말뚝과 그물위로 떠오르는 해는 서해안에서만 볼 수 있는 기막힌 서정이다.
마량포구는 서해쪽으로 반도를 이루고 저홀로 한 마리 해마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었다. 지구 공전으로 해가 가장 남쪽으로 치우쳐 뜨는 12월 22일부터 50일 동안은 이곳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포항 호미곳에서 솟은 해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같은 위도상의 마량포구에서 환상적인 일출을 연출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240초가 걸린다고 한다.
◇겨울 파편이 가득한 신성리 갈대 숲
마량포구를 빠져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부여방면으로 14km쯤 가면 신성리 갈대숲으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영화 '공동경비구역JSA'가 촬영된 곳으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숲에 도착하면 가슴이 펑 뚫린다. 폭 200m, 길이 1km의 갈대밭엔 금강 하구둑이 생긴 후 비옥한 강변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 갈대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6만여평에 달하는 갈색물결은 서해 합류를 앞둔 금강의 푸른 물결과 어울려 제방 너머 드넓은 서천벌을 위협하듯 넘실댄다. 갈대숲에 들어서면 갈대가 이렇게 키가 큰 지 깜짝 놀란다. 2~4m로 사람키를 훌쩍 넘긴다. 수십명이 들어가도 밖에서 보면 티도 안난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갈대밭 사이로 수많은 미로가 있고, 연인들은 추억을 찾아 미로를 헤매인다. 중간 중간에 통나무다리도 있고 김소월, 박목월 등 서정시인들의 주옥같은 시를 써놓은 50여개의 통나무 판자가 걸려 있다. 시를 읽어가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람이 불면 갈대밭은 파도타기를 한다. 겨울 햇살에 반짝이는 마지막 갈꽃들의 군무는 바람이 저만치 불면 소리만 들리다가 갑자기 후다닥 눈앞에서 연출된다. 눈이라도 내리면 신성리 갈대밭은 그대로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회덕 JC에서 호남고속도로를 갈아 탄 뒤→ 논산 지방도 68호→ 강경 국도 29호 → 서천 지방도 607호 → 마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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