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아내 설거지 할때 청소기 밀어야죠"

입력 2003-12-31 11:49:58

버스 안 풍경. 30대 커플은 아이를 안고 기저귀 가방을 들고 탄다.

콩나물, 기저귀값 때문에 입씨름하기도 한다.

40대 커플. 아내를 먼저 앉힌다.

남편은 뒤로 떨어져 앉아 애써 아내의 시선을 외면한다.

50대 커플. 주로 아내가 짐을 들고 탄다.

남편은 먼저 뛰어가 혼자 앉는다

가끔은 아내가 조는 동안 남편이 혼자 먼저 내리기도 한다.

60대 커플. 말할 것도 없다.

각자 알아서 타고 내린다.

세대별 부부의 모습을 그린 우스개이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 우스개 코너에는 부부 관계를 풍자한 유머가 넘쳐난다.

주로 나이가 들수록 부부 관계가 썰렁해짐을 빗대고 있다.

50대 남편은 한솥 가득 곰국을 끓이는 것이 두렵고(아내가 3박4일 정도 놀러가서) 60대는 (자신을 버려두고 갈까봐) 이사 가자는 소리가 두렵다는데....

2004년 1월 현대를 살아가는 부부의 자화상은 어떠한가. '30.60'. 30, 60대 부부는 꼭 한 세대가 차이난다.

부모.자식뻘 되는 30년의 세월 사이에 가치관은 어떻게 달라져가고 있을까. 그저 평범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30.60' 부부의 모습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이상구(34.'판커뮤니케이션즈' 대표).박순영(30)씨 부부. 결혼한지 3년째로 딸(2)을 하나 두고 있다.

이들은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다.

지난 97년부터 이씨가 운영하고 있는 광고기획사 사무실로 부부가 같이 출근하고 별 일이 없으면 퇴근도 함께 한다.

서로의 일상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셈이다.

"보통 부부가 같이 일하면 못 볼 것 다 보고 불편하다고 하잖아요. 집에서 아이 키우고 있을 때는 남편이 밖에서 있었던 얘기를 해도 이해가 다 되지 않았는데 직접 사무실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남편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박씨는 "일해 보지 않겠느냐"는 남편의 제의에 선뜻 응했다고 한다.

딸 의진이를 키우느라 하고 싶은 일을 못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자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도 되겠다 싶어 컴퓨터를 배우면서 사무실 경리를 맡은지 2개월 정도 됐다.

"아내가 즐겁게 하는 일이라면 적극 밀어주고 싶습니다.

컴퓨터 디자인쪽 공부도 해보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관련 일은 앞으로 아이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회사와 집에서 돈 관리를 하고 있는 아내에게 월급을 받는 신세가 됐지만 이씨는 머리가 한결 홀가분해졌다며 좋아한다.

포인트 활용 등 혜택을 보기 위해 신용카드를 딱 1개만 사용하는 이들 부부는 이왕 쓸 돈은 표시나게 쓰고 단돈 1천원이라도 쓸데없이 허비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젊은층의 이혼율이 높은 것은 경제적인 성공을 위해 조건을 보고 맹목적으로 결혼했다가 성격 차이 등 갈등을 참아내지 못 하는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동거생활을 미리 해보고 서로 잘 맞으면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는 20대들이 많은데 결혼과 이혼은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들 부부는 함께 술을 잘 마신다.

퇴근길에 맥주를 사 집에서 마시기도 하고 의진이가 잠자고 있는 동안 차를 옆에 세워두고 단골 포장마차에서 산낙지를 먹으며 소줏잔을 기울이기도 한다.

부부 갈등을 풀고 활력을 되찾는 이들 나름대로의 방법이다.

술을 입에도 못 댔던 박씨는 남편에게 술을 배워 이제 거의 술꾼(?)이 다 됐다고.

이씨는 집안일도 잘 거드는 편이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면 진공청소기를 밀고 아내가 빨래를 할 때 마른 옷가지를 개준다.

의진이도 잘 봐주고 목욕도 같이 시킨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가부장적인 사고가 확 바뀌겠습니까. 아버지를 보면서 자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굳이 여자를 부린다기 보다 자연스럽게 몸에 밴 보수적인 의식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자도 많이 바뀌고 있는 과정이라고 봐야겠지요".

이씨는 "집에서 마음은 항상 고무장갑을 끼고 있다"며 웃음짓는다.

주말에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을 떠나기 좋아하는 이들 부부는 올해 아들을 낳는 것이 목표다.

이씨가 차남이어서 아들에 대한 부담은 없지만 딸이 있으니까 아들도 키워봤으면 하는 마음이다.

"딸은 커서 엄마랑 친하게 지내는데 아빠도 아들이 있어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고 등산도 같이 하면 좋잖아요".

아들을 낳기 위해 서점에서 관련 책도 사서 읽고 있다는 이들은 새해 카탈로그, 캘린더 등 광고 주문이 많은 성수기를 맞아 정신없이 바쁘지만 부부가 함께 있어 든든한 힘이 된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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