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 시 심사평 "담담한 필치.적절한 언어 돋보여"

입력 2003-12-31 11:49:58

예심을 거쳐 온 40여 편의 작품에서 최후까지 남은 것은 '이월의 우포늪'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조용한 가족' '밥 나르는 여자' '새들은 날아간다' '술래잡기' '통장정리' '공단 세탁소' '신라 주유소' '파장' '소문' 등이었다.

모두들 그만그만한 목소리로 자기나름의 색깔을 지니고 있어 선뜻 이것이다 라고 손을 들어주기에는 몹시 망설이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정서의 구체화된 표현의 적절성을 염두에 두고 고심한 결과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 '이월의 우포늪' '조용한 가족' '새들은 날아간다'로 압축되었다.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는 그 짜임새나 이미지 처리의 깔끔함이 흠잡을 데가 없었으나 신인다운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덜한 점이 아쉬운 것이었다.

'이월의 우포늪'은 고대와 연결시킨 상상력의 확대가 우포늪의 분위기를 돋보이게 하는 솜씨가 주목을 끌었으나 그것을 어떤 인생론적 내용으로 좀더 구체화시켰으면 하는 지적이 있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새들은 날아간다'는 신인다운 활달한 감성과 거침없는 이미지 구사가 호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시속에 지닌 내용과 엇박자 되는 구절들이 있어 보여 이것 역시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조용한 가족'은 가난이 빚는 아픔을 얄밉도록 담담한 필치로 그려나가고 있는 시선이 돋보인다.

시니컬한 이런 시선은 자칫 격정의 목소리로 떨어지기 쉬운데 끝까지 제3의 눈으로 이끌어 가는 능력이 호감이 갔다.

또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적절한 언어 구사도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거듭 말하지만 예심에 올라온 앞의 열 한 편들은 보기에 따라 어디에 내어놓아도 당선작에 손색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더욱 분발을 바라며 정진을 빌 따름이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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