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0월 미국의 켈리 특사 방북 당시 북한이 농축우라늄방식의 새로운 핵개발 프로그램을 '시인'한 것을 계기로 한반도에는 1993, 94년의 1차 핵위기에 이어 2차 핵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새해 우리 정부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외교정책 과제는 북핵문제 해결이다.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남북화해.협력을 가속화할 수 있고, 한-미 현안문제인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관계 재조정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북-미 적대관계와 남북 분단체제의 산물이라고 할 때 단기간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북핵문제의 장기적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지금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데는 미국과 북한의 근본적 입장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국은 북한 '불량국가론'에 따라 북한이 핵개발 포기 등 먼저 흉기를 버려야 대화할 수 있다는 '입구론적 해법'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 북한은 핵문제를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로 보고, 미국이 대북한 적대시정책을 포기하면 핵활동을 동결.철폐하겠다는 '출구론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핵포기선언을 하면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선핵포기 선언을 할 수 없는 데는 미국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명분인 체제안전보장과 실리차원에서 핵동결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 주면 핵활동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내놓은 절충안은 미국의 '우려사항'과 북한의 '요구사항'을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해서 일괄타결하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핵해법과 관련해서 두 개의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미국 주도의 '대화와 압력의 병행원칙'에 입각한 북핵해법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과 중국 주도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원칙'에 따른 북핵해법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대북 제재와 봉쇄를 본격화해 북한 지도부를 압박하여 대량살상무기(WMD)개발을 막으려 한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구체안을 마련하고 북한의 무기수출과 마약 밀거래 등 불법적인 외화획득에 대한 저지에 나서는 등 '사실상의 경제제재'는 이미 시작됐다.
북한이 핵문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하면 '내부폭발(implosion)'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심각한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시간은 미국편이다.
이라크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이 북한 핵문제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선과 악으로 사물을 구분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인 부시 대통령의 대북관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인 북한 김정일 정권이 흉기를 버리지 않는 한 '정상국가'로 대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생각이 반영된 결과 출범 3년이 가까워 오도록 부시행정부는 대북정책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새해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진전 여부는 미국이 북핵문제에 어떤 해법을 들고 나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 행정부 내의 대북정책에 대한 참모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리하지 않는 이유는 강온 양면의 다양한 선택지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북한의 태도에 따른 다양한 선택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구체화되지 않으면 북핵문제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한반도 위기정세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북핵해결을 위한 6자 공동의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입장정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도 핵개발포기와 관련한 분명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밝혀야 한다.
우리 정부는 남북대화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틀을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의의 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평화번영정책의 가속화를 위해서는 북핵문제 해결 등 북-미 적대관계가 조속히 해소돼?한다.
북한의 생존전략과 미국의 세계전략이 충돌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불량국가론'과 '악의 축' 규정이 유지되는 한 남북관계의 진전도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른바 '불량국가'인 북한이 정상국가로 변신할 수 있도록 정상국가들이 포용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고유환(동국대 교수.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