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운영 주도권 다툼 도구 여전

입력 2003-12-31 08:53:56

권력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헌론은 현재 진행형이다.

총선 전이냐, 후냐의 개헌 시기논쟁이 지난해 말 불거졌던 것처럼 총선이 다가올수록 개헌론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권력구조 개헌은 답보상태에 빠진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닐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이 경우 개헌은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각각 외치와 내치를 나눠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의미한다.

구랍 17일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개헌에 대한 전망을 이렇게 밝혔다.

그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2006년 개헌을 얘기한 만큼 어차피 대두된다.

총선부터 자연적으로 개헌 얘기가 나와 가을에는 상당히 논의가 활발해 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개헌 논의가 사안에 따라 터져 나온 '산발적' 성격이 짙다면, 총선을 전후로 한 개헌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우선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개헌론에 기본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대통령의 지나친 권력 집중을 볼 때 지금과 똑같은 대선이 2007년에 반복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최근의 상황이 정리되고, 국민이 진지하게 다음 대선을 걱정하는 환경이 되면 개헌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생각이다.

대선 자금과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뒤 '대통령제의 폐해'를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면 언제든지 불거져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 대표는 총선 전 개헌에 대한 부담을 털지 못하는 눈치다.

최 대표는 "현재 개헌 얘기를 하면 정략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부적절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이재오(李在五) 당 사무총장이나 이강두(李康斗) 정책위의장 등의 생각도 최 대표와 별 차이가 없다.

여의도연구소 윤여준(尹汝雋) 소장은 "시대 추세가 분권형 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여론지지가 없는 상태에선 정략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며 개헌 반대 입장을 개진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 개헌론자의 목소리는 커져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3선급 이상 31명이 모인 중진 의원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4월 총선 전에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 했다.

개헌을 고리로 중진들의 결속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특히 분권형 대통령제는 서청원(徐淸源) 전 대표가 총대를 메고 있다.

서 전 대표는 "대통령 중심제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개헌을 하려면 총선 전에 해야지 총선 후로 미루는 건 하지 말자는 얘기나 다름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분권형 대통령제와 책임총리제로의 개헌은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의 소신 중에 하나다.

그는 "현재의 대통령제 아래에선 한 번 대통령을 잘못 뽑아놓으면 5년간 국민이 국정 혼란을 감수해야만 한다.

차제에 권력구조를 바꾸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헌론에 있어선 민주당도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나라당 보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논의를 먼저 시작해 일찌감치 결론을 내린 상태.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책임총리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강령 및 기본정책 개정안을 추인했다.

시기를 총선 후 개헌 쪽으로 못박아 총선 공약화를 추진할 기세다.

박상천(朴相千) 전 대표는 대회사에서 "4월 총선에서 배신론과 같은 부정적 슬로건도 중요하지만 신당의 여당프리미엄을 반감시키고 지지층에 희망을 주는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긍정적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총선을 전후한 개헌구상에 대해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면전환용', '불순한 의도'라고 폄하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공천권을 휘두르고 국회를 지배하는 구조는 아니다"는 반응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에 대해 "원론적으로 봐서 반드시 분권형 대통령제가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전제한 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은 국가적 지도자인 만큼 권력을 마구 줄이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며 분권형 개헌논의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지난 2002년 12월26일 "차기 총선에서 지역구도가 해소되면 국정 2기인 2004년 이후에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내각제에 준하는 수준으로 국정운영을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개헌론은 국정운영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권내 권력투쟁의 도구가 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다당제 구도로 치러질 총선에서 개헌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여기다 자민련이 가세하는 3당 정책연합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4월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원내과반수 확보를 자신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개헌론은 총선을 빌미로 한 정당간 합종연횡의 단초가 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결국 총선 이후 원내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이 개헌을 바탕으로 한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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