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비준안, 정치권 "총선앞 총대메기 싫다"

입력 2003-12-30 11:29:34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처리될 예정이던 29일 국회 의사당은 하루종일 의원들의 거친 항의로 시끄러웠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농촌출신 의원들은 "본회의장을 점거해서라도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겠다"고 나섰으며, 해당 상임위인 농림해양수산위는 자유무역협정 이행특별법안의 상정 자체를 거부했다.

총선을 앞두고 부담을 갖지 않으려는 정치권의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전체회의에 앞서 열린 각당 간사회의에서는 "FTA 비준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난 뒤에 이행법을 심의해도 늦지 않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이행법을 상정하지 않기로 전격 합의했다.

회의에서 의원들은 "FTA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농림부의 '무사안일'을 질타하는 데 바빴다.

농해수위와는 별개로 각 당의 농촌지역구 의원들도 조직적인 반대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한나라당 소속 농촌지역구 의원 60여명은 이날 별도모임을 열고 비준안 상정을 실력 저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의원은 "선 설득, 후 처리가 옳은 방향"이라고 전제한 뒤 "장관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처럼 FTA에 반대하는 농민단체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토론하고 설득하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민주당 의총에서도 논란이 계속됐다.

비준안이 상정될 경우 자유투표에 맡긴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긴 했지만 박주선(朴柱宣) 의원 등 당내 농촌지역구 의원들은 반대를 '권고적 당론'으로 채택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에 앞서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4당 원내총무 회담을 열고 비준안 처리방안을 모색했으나 묘책을 찾지 못했다.

결국 국회 본회의는 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농촌 출신 의원들 때문에 2시간가량 열리지 못하다가 결국 비준안 관련 법안을 제외한 안건만 처리키로 하고 오후 4시경 가까스로 개회됐다.

한편 이같은 논란으로 FTA 비준안의 연내 처리가 사실상 물건너 갔고 연계처리될 예정이던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박병윤(朴炳潤) 의원은 "예결소위에서 밤을 새워 FTA 관련 예산을 6천100억원으로까지 늘렸다"며 "정 안되면 FTA 관련 예산을 들어내고 예산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결위 소속 한나라당 허태열(許泰烈) 의원도 "농촌을 위한 예산이 이번에 통과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간다"며 '전향적 검토'를 요청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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