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현장 홍일점 감식 여경(女警) 이정남(30) 순경

입력 2003-12-23 11:33:55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청도 대흥농산 화재 참사 이후 줄곧 화재현장을 누비며 남성 과학수사 요원들과 함께 시신수습과 감식활동을 하고 있는 홍일점 여경찰관 이정남(30) 순경(청도경찰서 수사계).

경북지방경찰청과 산하 24개 경찰서에서 과학수사 경찰로 활동중인 여경은 단 2명. 이 중 한사람인 이 순경은 지난 17일 오후 퇴근을 준비하던 중 대흥농산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지문채취 장비 등 감식에 필요한 장비를 정리한 케이스와 카메라.비디오, 현장 보존용구 등을 들고 20여분 만에 현장에 달려왔다.

화재현장에 도착하자 아수라장이 된 이 버섯공장에서 일했던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장 안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소방관 외 일반인들의 접근을 막는 일을 도왔다.

"사고 발생 이틀 만에 잔불이 어느 정도 진압되고 나서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경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감식반원들과 사고 현장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사체 훼손이 너무 심해 누가 누구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어요".

20여명의 남자 감식요원들과 함께 이 순경은 불에 타 무너져 내린 철골구조물 사이에 뒤엉켜 있거나 심하게 훼손된 사체를 사진과 비디오로 일일이 촬영했다.

국과수 직원들과 합동으로 시신을 수습해 대구의료원으로 옮기는 것도 도왔다.

현장 감식 및 검증에서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 '당당하게' 화재현장을 누비며 감식활동을 했다.

과학수사 업무를 담당한 지 만 8개월밖에 안된 '왕초보'지만 센스도 있고 붙임성도 좋아 시신수습과 감식에 참여했던 남자 직원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했다.

"화재 현장을 감식하고 시신수습 작업에 동참하면서 순간의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이 많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순식간에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원칙을 지키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죠".

"화재 발생 이후 초기에 일부 유가족들의 비협조로 '일'추진이 안되고, 유독가스와 연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었다"는 이 순경은 "사건 현장에는 늘 흔적이 있다는 과학수사의 진리를 믿고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꼼꼼하게 살피고 관찰하는 국과수와 선배 과학수사 요원들과 직접 활동하면서 '한 수' 배웠다"고 말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살려 앞으로도 이 분야에서 더욱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는 이 순경은 대구 출생으로 계명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0년 9월 청도경찰서 교통지도계와 화양파출소 근무를 시작으로 경찰에 입문, 현재의 수사계로 자리를 옮겼다.

올 봄 결혼한 대학 과커플이었던 남편 현시국(30) 대위는 전방 부대에 근무하고 있다.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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