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지는 '선진국의 꿈'

입력 2003-12-23 11:43:40

한국은행이 매우 이례적으로 우리 경제 앞날에 대한 '잿빛' 보고서를 내놓았다.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5.2%에 달해 하반기부터 '햇살'이 비칠 것이라며 낙관론으로 일관해 온 한국은행인 만큼 극단적 비관론은 충격을 더해준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그동안 기술모방 등 단순 팽창주의 성장을 했으나, 이런 전략이 한계에 부딪혔다"며 "이미 선진국과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도높게 지적했다.

소득 2만달러를 부르짖고 있는 정부나, 조금만 참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서민으로서는 그야말로 경악스런 뉴스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한국경제에 희망이 없다는 얘기다.

한국경제 독설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의 얘기도 아니고 뉴욕타임스의 분석도 아니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스스로 내린 결론이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문제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주저앉았다"며 그 원인으로 10여 년 동안 생산성이 정체돼 미국의 50% 영국.프랑스.싱가포르.홍콩의 60%, 일본의 66%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엄청난 설득력을 지닌다.

경제에 희망이 없으면 '죽은 경제'다.

지금 우리경제는 8부 능선에 올라있다.

그러나 지금부터가 진정 험한 길이다.

그런데 벌써 하산 준비에 바쁜 것이 우리의 현주소 아닌가. 더구나 우리는 일본의 기술력에 밀리고 중국의 물량 공세에는 쫓기고있는 샌드위치 신세다.

이런 판국에 미국의 절반밖에 안되는 생산성으로 어떻게 경쟁을 하겠는가.

세계에서 부지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국민인데 왜 이토록 생산성이 낮은가. 뿌리깊은 상류층의 부패, 투기 바람을 일으키며 무임(無賃)승차를 일삼는 패거리들, 내 것밖에 모르는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돈이라면 명예와 인간성까지도 팔아먹는 천민(賤民)자본주의가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내부 시스템의 개혁없이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하다는 한국은행의 지적은 옳다.

이래저래 부지런한 서민으로서는 속터지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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