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뭐 특별한 날인가요. 그냥 휴일이니까 TV나 보면서 놀아야죠".
초등학교 4학년인 미혜(가명.11)는 4년전부터 산타할아버지를 잃어버렸다.
IMF때인 99년 3월 아빠.엄마가 부도로 갑자기 집을 나간뒤 소년소녀 가장들이 모여 사는 대구시 북구 노원동 '꿈나무 집'에 오빠 2명과 여동생 미은(9)이와 함께 들어왔는데 그해 겨울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는 탓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는 미혜는 그래도 "올해 크리스마스때는 치마를 선물받고 싶다"고 말했다.
꿈나무 집에 모여 사는 28명 아이들의 올 성탄절은 '미혜'와 비슷하다.
송년 모임과 성탄절 선물 준비로 도심이 차량으로 붐빈 21일 오후 6시, '꿈나무 집' 아이들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조용한 밤'을 맞고 있었다.
식당에 둘러앉아 서둘러 저녁 식사를 끝내고는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TV 앞에 앉아 있다가 잠자리에 들며 며칠 남지 않은 한해의 하루를 그렇게 보냈다.
이날 밤 '꿈나무집'에서는 냉기가 싸늘한 거실 한켠에 놓인 낡은 트리와 TV에서 나오는 캐럴만이 연말 분위기를 대신할 뿐이었다.
꿈나무 집 아이들이 올해 성탄절날 받을 선물은 인근 3공단에서 사업을 하는 아저씨가 점심때 자장면을 사주기로 약속한 것이 전부다.
박은경 원장(42)은 "예전에는 연말연시가 되면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자원봉사자 몇분을 빼고는 도움의 손길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달들어 기부 건수도 고작 3건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지는 경기침체로 복지시설마다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이곳 '꿈나무 집' 아이들이 느끼는 '냉기'는 더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 중 상당수가 부모의 따뜻한 품속에서 자라다가 가정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이곳에 갑작스레 맡겨진 경우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부모가 없는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91년 설립됐는데 IMF를 지나면서 부도나 실직때문에 부모가 있으면서도 이곳에 들어오게된 아이들이 많아졌다"며 "엄마.아빠와 함께 성탄이나 연말을 보낸 기억을 가진 아이들이어서 내색은 않지만 '마음속 아픔'은 더 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전문 보육 시설이 아닌 탓에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아 '온정의 발길'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실정.
같이 꿈나무집에 들어온 큰 오빠 기훈(18)이가 고교를 졸업하는 내년 2월이면 이곳을 떠난다는 미혜. 잃어버린 미혜의 산타가 올 성탄절 이브엔 되돌아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하며 늦은 밤 '꿈나무집'을 빠져 나왔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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