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농장 참사-"복도 없제, 하늘도 무심..."

입력 2003-12-20 10:57:14

"저 뜨거운 통안에서 얼마나 살고싶어 울부짖었겠노. 마지막 가는 길 얼굴이라도 봐야제".

19일 오후 화재 참사로 희생된 고인들의 시신 수습이 시작된 청도 대흥농산 북쪽문 부근. 이정희(69.청도군 화양읍 토평2리) 할머니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무너진 버섯공장을 바라보며 손아랫동서 이순덕(58)씨의 택호를 부르며 오열했다.

"동서는 17세 때 가난한 시골 집안에 시집와 서른도 안돼 신랑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수절해왔어. 갖은 고생 끝에 아들딸 4남매 키워놓았는데…". 이 할머니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은 동네 위.아랫집에서 살던 막내(셋째) 동서가 일찍이 청상과부가 돼 의지할 곳이 없자 바로 위 동서인 이 할머니를 무척 따라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각별한 사이였다.

"복도 없제. 큰 아들(37)은 허리가 아파 기동도 못하고, 유복자인 막내 딸(30)은 몇해 전 결혼을 했으나 콧병이 나서 아프고. 어떻게든 먹고 살려고, 또 아픈 자식들 치료비라도 보태려고 3년 전부터 버섯공장에 취직해 그렇게도 발버둥치더니 하늘도 무심하지…".

이 할머니는 "이렇게 큰 공장에 불이 났는데 대피할 수 있는 문이 하나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인테리어업에 종사하는 둘째 아들 길수(35)씨도 "자식들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효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렇게 졸지에 가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울먹였다.

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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