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되돌아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고, 가슴을 치고 후회해야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것뿐이랴. 욕해주고 싶고, 분통을 터트릴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무언가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잊고 지나왔다.
그러면서도, 내게 가혹하고, 손해 끼친 것들에 대한 억울한 것들만 생각날 수밖에 없다.
그것뿐인가. 한 해의 마지막 남은 날까지 미운 놈 욕하고, 흉보고, 저주스런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 십 분 간 쉴 때, 흘러간 뽕짝들으며 가판대 도색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을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 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그렇게 소중했던가'-이성복.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 무늬 자국'의 시 한 편을 인용하면서, 누구나 한 번은 위와 같은 경험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끝내 놓지 않고 절반이나 쏟아진 종이컵을 쥐고 차에 오른 일.
일상의 작고 사소한 사건을 통해 시인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우리의 굳은 의식을 일깨운다.
여러 번 읽고 나면 왠지 입가에 잔잔한 씁쓸한 웃음이 번진다.
바로 우리들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좋은 문학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고 누가 그랬던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시들의 전부가, 유치하기가 마치 교외의 모텔 건물들 같이 구역질 날 것 같은 연애시들이 판을 칠 때, 유치하게 짝이 없는 우리 삶을 전복시켜주는 것은 어떤 문학이어야 할까 생각한다.
시인 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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